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3 17:19

수정 2020.02.03 17:19

[기자수첩]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장애인인 친구가 한 명 있다. 목발이 없으면 쉽게 걷지 못하는 친구다. 언젠가 장애인으로 사는 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평생 이렇게 살아서 불편한 줄도 모른다고 했다. 편해본 적이 없어서 편한 걸 모르겠다니.

반대로 불편해 본 적이 없으면 불편함을 모를 거다. 나는 뼈가 부러진 적이 없다. 휠체어를 타본 적도 없다.
그러다 몇 달 전 휠체어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처음으로 휠체어를 탔다. 불편함은 생각보다 컸다.

가끔 여행 갈 때 캐리어를 끌면 오른손에 전해지는 덜컹거림이 불편하다. 인도가 원래 이렇게 울퉁불퉁했나 싶다. 휠체어를 탔을 때 덜컹거림이 캐리어의 10배쯤 된다고 하면 과장일까. '쿵' 하고 걸리고, '탁' 하고 막히기 일쑤다. 턱은 왜 이리도 높고 많은지 경사로에 따라 우회하기도 쉽지 않다.

어디 이뿐인가. 지하철이라도 타면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다. 지하철 출구가 여러 개라고 해도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엘리베이터 딱 하나뿐이다. 출구를 눈앞에 두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맬 때면 마음부터 헛헛하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은 어찌나 넓은지 열차를 타려다 "아 나 무서워서 안 되겠어"라는 외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열차를 몇 개 보내고 망설임 끝에 재시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휠체어 앞바퀴가 열차 틈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를 본 승객들이 도와주려 다가왔다. 겁먹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휠체어를 들고 열차에서 내려버렸다. 실제로 몸이 불편한 사람이었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날 취재를 마치고 친구에게 경험담을 전했다. 친구는 여유를 부리며 "휠체어 앞바퀴를 들고 타면 되지"라고 말했다. 아니, 오토바이도 아니고 앞바퀴를 든다고? 어벙벙한 내게 친구는 "넌 몰라.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라며 웃었다.

그래 맞다. 나는 모른다.
휠체어를 하루 타고 떠드는 내 모습이 그에게는 얼마나 가소롭겠나. 아차 싶어 체험형으로 쓰려던 기사를 고쳤다. 알량한 내 경험담은 줄이고 휠체어 사용자의 목소리를 새로 담았다.
제대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e콘텐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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