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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이상문학상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3 17:50

수정 2020.02.03 17:50

1960년대 한국문학 감수성의 혁명으로 불렸던 소설가 김승옥은 오랜 기간 생활고에 찌들어 살았다. 1965년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문단의 기린아로 떠올랐지만, 돈이 될 만한 글은 쓰지 못했던 탓이다. 이런 작가가 안쓰러웠던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어느 날 서울의 특급호텔 반도호텔 방을 빌려 그곳에 김승옥을 밀어넣었다. 돈 걱정 말고 소설만 쓰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글에는 손도 안댄 채 호텔에서 달아나버린다.

이어령은 그런 작가를 다시 붙들어 장충동 한 호텔에 정착시켰다.
방 2개를 빌렸다. 한 곳은 김승옥 집필용, 나머지 한 곳은 작가 보초용으로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내줬다. 그때 거기서 나온 소설이 '서울의 달빛 0장'이다. 바로 1977년 이상문학상 첫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어찌 보면 이혼한 아내에 대한 단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외설적 표현이 상당하다. 그러면서도 1970년대 산업화시대 한 인간의 상실감, 환멸이 뒤섞여 있다.

이상문학상 수상자 면면은 한국 문단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김승옥 뒤로 이청준, 오정희, 박완서, 최인호, 서영은, 최일남, 이문열, 임철우 등의 이름이 차례로 나온다. 2000년 이후엔 한강, 김숨, 박민규, 김애란 등으로 젊어지긴 했으나 당대 가장 핫한 이들로 맥이 이어진 건 마찬가지다. 이들은 27년 짧은 생을 살다간 천재작가 이상(李箱)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게 된 것에 무한한 기쁨을 표했다. 이상에 대한 로망이 어찌 수상 작가들에게만 있었겠나.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그 자체로 국내 서점가에서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였다.

동인·현대문학상과 함께 국내 대표적 문학상으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이 수상 작가들 보이콧으로 시끌하다. 올해 수상 통보를 받은 작가들이 사실상 '저작권 3년 독점' 등을 명시한 조항이 부당하다며 상을 전격 거부한 데 이어 지난해 대상 수상작가 윤이형은 급기야 절필을 선언했다.
함정임 등 동료 작가들은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문학사상을 상대로 청탁 불응운동에 나섰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여론 눈치만 보는 문학사상이다.
책임감 있는 사태 해결 여부에 이상문학상의 명운이 갈릴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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