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기초보안 설정조차 안하고… '비밀서약'만으론 회사 못 지켜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3 18:03

수정 2020.02.03 18:26

[中企 영업비밀 유출, 막을 수 있다](中) 인식 부족도 문제
접근 제한장치없이 관리한 자료
法 "기밀 아니다" 배상 인정 안해
자체적인 보안관리체계 구축하고
정부 차원의 인식강화 교육 필요
피해발생 이후 증거수집 위한
디지털포렌식 지원 목소리도
#.자동 테이핑 머신 제조업체 A사에 근무하던 B씨는 퇴직해 동종업체 C사를 설립했다. B씨는 A사를 나가면서 A사 설계도를 무단 반출했다. A사는 "설계도는 영업비밀이다. B씨에게 비밀유지서약서를 받았다"며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법원은 A사가 설계도를 영업비밀로 관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봤다. 법원은 "이 사건 도면은 컴퓨터 파일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파일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접근제한장치를 두었거나, 전산보안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 관한 증명이 없다"고 말했다.


기초보안 설정조차 안하고… '비밀서약'만으론 회사 못 지켜

영업비밀 노출이 기업 부도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중소기업들의 보안 수준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스스로도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영업비밀 침해가 발생할 경우 고소장 작성, 디지털포렌식 작업 지원 등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기 77% "영업비밀 뭔지도 몰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영업비밀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2018 우리기업 부정경쟁행위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1521개 중소기업 중 영업비밀 침해 등 부정경쟁행위를 인식하는 비율은 23.4%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의 76.6%가 영업비밀 침해와 법률상 영업비밀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회사 내부자료를 모두 영업비밀이라고 인식은 하고 있지만 실제 보호를 하고 있는 경우는 드문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비밀번호 없이 파일로 관리하거나 근로자에게 통상적인 비밀서약서만 받는 경우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식이 낮다 보니 영업비밀 보호 수준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2019 중소기업 기술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소기업 기술보호역량은 2016년 49.3점에서 2017년 51.3점으로 높아졌지만 2018년에는 44.9점으로 크게 떨어졌다.

■정부 교육 홍보 필요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선 정부가 영업비밀 침해 전과 후를 분리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전 보호를 위해선 정부가 중소기업 상대로 영업비밀인식교육 홍보를 강화하고 보안관리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

정부가 진행하는 영업비밀 지원사업은 더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 절반은 정책을 이용해본 경험조차 없기 때문이다. 중기부 '2017 중소기업 기술보호수준 실태조사'를 보면 기술보호역량강화 지원사업 이용경험은 '활용한 적 있음' 50.7%, '활용한 적 없음' 49.3%로 조사됐다.

특허청 산하 지광태 영업비밀보호센터장은 "중소기업은 영업비밀 프로그램을 설치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직원교육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컨설팅 사업은 더 늘어야 한다"며 "현재 예산적 한계 때문에 특허청은 1년간 13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영업비밀 보안수준을 컨설팅하고 영업비밀 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질 법률지원 필요

영업비밀침해 예방뿐 아니라 침해 발생 이후 정책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지원정책은 주로 법적 구제 가능성, 대응에 필요한 자료목록 제시 같은 단순 법률상담이다. 실제 피해기업은 법률상담뿐 아니라 사건 초기 내용증명, 고소장 작성 및 영업비밀 침해 증거자료를 첨부하기 위한 디지털포렌식 작업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 센터장은 "피해기업은 내부직원이 영업비밀을 빼돌렸다는 증거를 잡기 위해 자사 컴퓨터를 디지털포렌식 작업한다. 증거를 고소장에 동봉하면 경찰은 이를 보고 상대기업 수사와 압수수색을 진행한다"며 "디지털포렌식 작업에 고액과 전문성이 필요한 만큼 이를 지원해주는 정책도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법무법인 율촌 임형주 변호사는 "영업비밀침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침해를 입증하는 거다. 피해기업은 침해를 입증하기 위해 영업비밀을 가로챈 상대기업 내부 증거가 필요하다.
이를 얻을 방법은 압수수색밖에 없다"며 "압수수색은 형사절차에서만 진행되니 고소장 작성과 디지털포렌식 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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