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물가 1.5%↑…13개월 만에 0%대 저물가 탈출
채솟값·기름값 상승이 주요인…"작년 기저효과 해소"
물가안정목표 여전히 밑돌아…복지 정책 영향 지속
전염병 영향은 미지수…메르스때 일부 품목 가격↓
"소비 수요 둔화되면 수요 측 하방 압력 작용" 우려
당국은 올해 물가 상승률이 1%대에서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로 국내 경기가 위축되면 물가를 다시금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5.79(2015년=100)로 1년 전보다 1.5% 올랐다. 물가 상승률은 2018년 12월(1.3%) 이후 유례없이 긴 기간 1%에 미치지 못하다가 13개월 만에 1%대를 회복했다. 상승 폭은 2018년 11월(2.0%)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채소류 가격이 전년 대비 15.8% 뛰었다. 무(126.6%), 열무(122.0%), 배추(76.9%), 브로콜리(57.2%), 양배추(54.0%), 상추(46.2%), 부추(33.2%), 깻잎(31.0%), 풋고추(30.0%) 등의 오름폭이 특히 컸다.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국장)은 "2018년 하반기 무더위로 고물가가 나타난 데 따른 기저효과(경제 지표를 평가할 때 기준 시점과 비교 시점 간 상대적인 수치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가 종료되면서 채소류를 포함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라 전체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채소와 함께 생선, 해산물, 과일 등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0개 품목의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도 2018년 12월(6.6%) 이후 가장 큰 4.1%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석유류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다. 전년 대비 상승률은 12.4%를 기록했는데, 2018년 7월(12.5%) 이후 가장 크다. 역시 국제유가 하락과 함께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지속됐던 유류세 인하 정책이 종료된 데 따른 기저효과가 걷힌 영향이다. 작년 한 해 석유류 가격은 전년 대비 5.7% 내렸었다.
올해는 연초부터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 갈등이 불거지면서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띠었다. 이런 영향에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9주 연속 오르기도 했다. 통계청은 석유류에서의 기저효과가 채소류에서보다 더 컸다고 봤다.
작년 하반기 들어 사상 처음으로 0%에 미달하는 물가 상승률이 나오자 '디플레이션'(deflation,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며 경제 전반을 위축시키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통계 당국은 0%대 이하의 물가 상승률이 1년 이상 장기간 지속될 때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작년의 저물가 상황은 기저효과와 정부 정책 등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어서 디플레이션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올해부터는 1%대 물가를 회복할 것이라는 정부 예측이 맞아떨어졌지만, 여전히 통화 당국인 한국은행이 설정한 물가 안정 목표(2.0%)에는 미치지 못한다. 2%대 미만 물가 상승률은 2018년 12월부터 14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무상교육·급식·교복,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교육·보건 분야에서의 복지 정책이 당분간 시행될 예정이어서 앞으로도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통계청은 내다봤다. 안 국장은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내다본 것과 같이 1%대 초중반 정도의 물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정책의 영향은 낮은 수준의 근원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계절적·일시적 요인에 의한 충격을 제거하고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는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근원물가)는 전년 대비 0.9% 오르면서 6개월째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 상승률은 0.8%로, 11개월째 0%대다.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복지 제도 확충이 일단락되는 2022~2023년 이후부터 이 같은 하방 요인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염병으로 내수 위축세가 더욱 심해지면 물가 상승률이 다시 꺾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사태가 조기 종식되지 않으면 경기 하방 압력으로의 작용이 예상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물가에 미친 영향은 다음달부터 가시화될 것이라고 통계청은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앞서 2003년에 있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태는 물가에 준 영향이 특별히 관측되지 않았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때는 레포츠 이용료, 놀이시설 이용료 등 오락·문화 관련 일부 품목의 가격이 5~6월에 반짝 내렸다가 7월께 곧바로 반등했었다. 2015년은 지난해와 같이 0%대 물가가 1년 내내 이어졌던 해였는데, 메르스 때문이라기보다는 국제유가의 하락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반등 신호를 보이던 국내 경기 상황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찬물을 끼얹으면서 연쇄적으로 물가를 더 끌어내릴 상황이 올 것을 우려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미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에 우리 경제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미 수요 측 하방 압력은 존재하고 있었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경기가 더 안 좋아질 확률이 높아 하방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당장은 소비 수요가 둔화되면서 수요 측면에서 물가를 떨어트리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올해도 연간으로는 작년과 같이 0%대 물가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위원은 "CV 사태로 유통이나 서비스 부문에서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순 있겠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며 "물가가 대세적으로 1%대로 올라섰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통계청은 소비자물가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최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마스크를 조사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마스크는 그간 소비 지출 내 비중이 크지 않아 예비 조사 품목이 아니었는데,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지면서 올해 개편을 계기로 조사 항목에 넣겠다는 방침이다. 집계한 수치는 내년부터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와 관련, "마스크 등 의약외품의 수급 가격 안정을 위해 적극적이고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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