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암호화폐 정책, 더 미적거리면 안될 이유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4 17:10

수정 2020.02.04 17:10

[이구순의 느린 걸음] 암호화폐 정책, 더 미적거리면 안될 이유
"가상화폐거래소가 매도, 매수, 주문의 제출, 체결, 청산 등 한국거래소와 그 회원인 금융투자업자, 예탁결제원을 통해 이뤄지는 주식거래와 유사한 외관을 형성해 운영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외관을 형성했다고 하더라도 가상화폐와 주식이 동일한 성격의 재산이 아니고, 가상화폐거래소는 한국거래소와 달리 국내에만 수십개가 존재하며, 각 거래소 사이에 같은 가상화폐의 거래가격에 차이가 발생하는 등 운영형태, 운영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한국거래소와 달리 가상화폐거래소를 규율하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는 유사한 외관을 형성했음을 들어 한국거래소와 가상화폐거래소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가상화폐거래소의 거래참여 여부에 대한 적절성, 비난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현행 법령상 가상화폐거래소의 거래참여 자체가 금지된다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상 가상화폐거래소가 거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당연히 기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법원이 암호화폐거래소의 자전거래에 대해 내린 판단이다.

어려운 법률 문구를 내 나름대로 이해했더니 '암호화폐거래소에 적용할 법령이 없어 자전거래를 금지할 수 없다. 암호화폐거래소와 한국거래소는 외형상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정도로 보인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들의 자전거래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한 목적도 있고, 나쁜 의도도 있지만, 소위 '한탕'을 노리는 일부 세력들이 투자자를 현혹하기 위해 자전거래를 써먹는 일이 잦았다. 이 세력들은 투자자들에게 재산적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 암호화폐 산업 전체에도 독버섯 같은 존재다. 업계 전체를 사기꾼으로 보이도록 만드니 말이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자전거래 기준을 포함한 암호화폐 관련 정책을 만들자고 정부에 요청해 왔다. 정책을 제시하면 '법대로' 사업하겠다고. 그 법을 어기는 잘못된 세력을 처벌해 달라고 애원한 게 벌써 3년째다. 그런데 정부는 그 얘기를 귓등으로도 안 들은 모양이다. 3년째 어떤 정책도 안 나왔으니 말이다.

이 판결을 이끌어낸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는 그나마 관리(?)가 되는 기업이다. 애초에 위법을 쉽게 저지를 수 없는 대상이었다. 문제는 이미 나쁜 의도를 품고 있는 독버섯 세력들이다. 그들에게는 이번 판결이 면죄부 같은 것 아니겠는가. 정부가 정책을 만들기 전에 충분히 한탕을 할 여유가 생긴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더 이상 정부가 암호화폐 정책을 미적거려서는 안되는 명백한 이유가 생겼다.

정부가 암호화폐 투기를 근절하고, 선량한 투자자들의 피해를 예방하겠다고 선언한 지 2년이 지났다. 그래 놓고도 정작 국민의 피해를 막아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에는 여전히 나서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미적거리면 안된다.
당장 자전거래를 통한 암호화폐 시세조작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피해에 대해 정부가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놓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을 보호하고, 그 안에서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제도를 다듬는 데 더 이상 미적거리지 않기를 바란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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