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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문래동 쪽방촌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4 17:10

수정 2020.02.04 17:10

유엔에서 주거권리를 담당하는 한 외국인 공무원이 서울의 고시원을 방문한 뒤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을 살게 하느냐"라며 고시원의 방을 관(棺·coffin)이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고시원은 판잣집, 비닐하우스, 지하방, 옥탑방, 달방(여관·여인숙의 월세방)과 함께 '현대판 쪽방'에 해당한다. 만약 이 관계자가 한국의 주거 피라미드 중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쪽방을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쪽방은 도시빈민에게 주어진 최저의 실존현장이다. 빈곤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쪽방에 대한 법적·정책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집도 주택도 아닌 '비주택' 주거공간일 뿐이다. 이곳에 사는 도시의 빈자들은 냉난방, 상하수도, 보안·방재·방음이 배제된 공간에 몸을 누인다.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비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2005년 5만7066가구에서 2015년 39만3792가구로 폭증했다. 서울 동자동, 돈의동, 창신동, 중림동, 문래동 등 서울시내 5대 쪽방촌에 3296명의 거주자가 있다. 그런데 쪽방의 문제는 열악한 주거공간에 끝나지 않는다. 법망의 사각지대인 쪽방이 가진 자의 부동산 투기와 돈벌이 수단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쪽방의 평균 임대료는 18만2550원으로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 3만9400원의 4배를 넘어섰다. 최저 소득자가 최고 임대료를 부담하는 악순환의 현장이다.

서울시는 최근 문래동 쪽방촌 일대 1만㎡를 정비해 40층짜리 1200가구 주상복합타운을 짓기로 했다. 주민들을 내쫓지 않고 지역 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임시거주토록 한 뒤 2023년에 영구임대방식으로 100% 입주시키는 방식을 적용한다. 월 임대료는 3만2000원에 불과하다.
특히 신혼부부용 행복주택을 병행 배치해 고립되거나 슬럼화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서로 어울려 이루는 '소셜믹스'의 실험장이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 '지상의 집 한칸'이 절실한 요즘 문래동 쪽방촌 도시재생 모델이 기대를 모은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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