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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신중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0 17:27

수정 2020.02.10 17:27

[fn논단]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신중해야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7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대한항공 등 56개 상장회사에 대한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 목적에서 일반투자 목적으로 변경한다고 공시했고, 국민연금이 공시 대상기업에 배당 확대를 요구하거나 위법행위를 한 이사의 해임을 청구하는 것과 같은 주주권을 행사할 우려는 커졌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2018년 7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서부터 이미 강화돼 왔다. 2019년 12월 말 적극적 주주활동 대상기업 및 범위 등을 명시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했고, 소위 5%룰로 불리는 주식대량보유보고제도에 따른 공적연기금의 공시 의무를 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양 날개를 달게 된 격이 됐다.

언뜻 보면 주식을 보유한 기관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 많다.
2019년 11월 말 현재 국민연금기금은 724조원으로 2019년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931조원의 37.5%에 해당하는 글로벌 넘버 3위의 거대 기금이다. 2019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액은 123조원으로, 상장사 시총의 7.1%를 국민연금이 소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313개, 10% 이상인 기업도 96개에 이른다. 국민연금기금의 17.1%만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데도 이 정도인데,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는 기업만 해도 현재 포스코, KT, 네이버, KT&G,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9개에서 몇 배 더 늘릴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을 '연못 속 고래'로 비유하듯이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큰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시장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을 안고 있다.

최고 의결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 정부위원 5명, 민간위원 14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위원장을 비롯한 이들 위원은 대부분 정부가 사실상 임면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이들 위원은 기금운용 전문가도 아니다. 주주권 행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구성도 정부 영향력하에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경영자율성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에 이렇게 열을 올리는 저의를 잘 알 수는 없지만, 정권이 바뀌면 이 모든 과정이 권한 남용으로 의심받을 소지가 있음을 과거 정권 사례에서 배우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해외에서도 대세라 하지만, 국민연금이 본받을 것이 전혀 못된다.
보통의 기관투자자는 투자 대상기업을 수익실현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기금은 가입자의 연금보험료로 조성된 자금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기금이 자신의 구성원인 기업의 경영권을 마구 흔든다는 것은 애당초 앞뒤가 맞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쳐 어수선한 경제상황에서 기업의 투자의지를 꺾어놓을 수 있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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