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인간적인' 테크놀로지가 되려면

김아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3 18:02

수정 2020.02.13 18:02

[기자수첩]'인간적인' 테크놀로지가 되려면
최근 한 방송사에서 암으로 일곱 살 딸을 잃은 어머니가 가상현실(VR) 기술의 힘을 빌려 다시 만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나연아, 엄마야"로 시작하는 예고편부터 심금을 울렸던 해당 방송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을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우연히 SNS에서 이 방송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글을 접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하면서 인간의 어두운 본능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극단적 미래를 담은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를 실제 인물에 적용하고 다 같이 구경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비판의 근거다.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그저 방송사가 신기술을 소개하는 정도로만 여겼던 기자는 이 의견을 접한 뒤 충격을 받았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세상이 앞으로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고 시청률을 위해서 드라마틱한 사례를 찾은 것뿐이었을지라도 이 '가슴 아픈 구경거리'가 방송사에 부를 안겨주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잔인한 행위에 '시청'을 하는 방식으로 일조했다니 끔찍했다. 또 남의 불행을 보며 불쌍히 여기면서 마음속으로는 본의 아니게 위안을 삼는 것도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테크놀로지에는 윤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기자는 이번 사건으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본디 윤리성이 결여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예상치 못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깨우치지 않으면 앞으로 수많은 기술들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 때 이같은 논란이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그 방송에 대해 아무런 불편함을 못 느끼다 왜 나쁜 것인지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글을 읽어서 기자가 각성했던 것처럼 윤리를 의무적으로 주입해서 의식적으로 '휴머니즘'을 교육한다면 적어도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이미 해외에서는 컴퓨터 사이언스 과목에 윤리 모듈을 접목시키는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기술의 파급력이 커지고 있는 국내에서도 이같은 윤리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테크놀로지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은 없는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예상치 못한 피해자는 없는지, 이 기술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충분히 고민하는 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

true@fnnews.com 김아름 정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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