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지방자치는 일종의 훈련… 적어도 10년 지나야 자리잡는다" [데스크가 만난 사람]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3 16:48

수정 2020.02.23 16:48

김순은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에게 듣다
'감염병 역학조사관 운영권'처럼
중앙정부·광역시도만 권한 쥐면
현장에선 신속한 대응 어려워
세금 낼 사람 줄어든 도시는
특례시로 지정하는 방법 고민
복지재정 부족한 곳은 '특구' 추진
김순은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남은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자치분권의 르네상스를 열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김순은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남은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자치분권의 르네상스를 열어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30여년간 학계에서 지방자치 연구에 매진해온 한 학자는 항상 머릿속에 물음표가 존재했다. '왜 정부는 긴급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이 학자는 2018년 외부 조언자에서 정부조직 책임자로 잠시 옷을 갈아입었다. 이후 3년여간 정부, 국회 등 국가조직의 프로세스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김순은 위원장은 재작년 1월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취임, 2019년 3월 직무대행을 거쳐 같은 해 5월 위원장에 임명됐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는 조직의 총책임자가 된 것이다.

김순은 위원장은 "정부 조직에 참여해 직접 제도를 만들다보니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느꼈다. 여러 분야의 시스템이 안정돼 있다는 의미"라면서도 "좋게 표현했을 땐 안정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안정된 시스템을 고치는 데는 힘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학계에 있을 땐 정부가 주요 사회문제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정부 측 일을 진행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해진 절차를 지키고 의견을 수렴하는 등 반드시 필요한 과정을 거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렇다면 안정적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의사결정 과정을 단축하는 방법은 없을까. 김 위원장은 그 방법으로 '지방분권'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행정 권한이 중앙에 크게 집중돼 있어 지자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여지가 부족해 신속한 현장 대응이 어렵다는 진단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감염병 역학조사관 운영 권한'이 대표적이다. 권한이 중앙정부와 광역 시·도에 있어 일선 지자체의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지방이 잘하는 일은 지방이 하고, 지방이 하지 못하는 일은 국가가 보완하면 시스템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며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의욕도 넘치고 열심히 하신다. 그분들이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위원회의 미션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인구감소에 따른 효율적인 지자체 운영도 올해 김 위원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인구 증가를 전제로 운영돼온 저효율·고비용의 현 시스템을 개선하고 복지재정 부족에 허덕이는 지자체를 '복지특구'로 지정하는 등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 19일 1기 위원회를 마무리하고 2기 위원회 출범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 위원장을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위원회의 그간 성과와 남은 숙제 그리고 분권에 대한 평소 그의 지론을 들어봤다.
■ 김순은 위원장 약력 △65세 △강원 춘천 △춘천고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학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켄트주립대 정치행정학 박사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
■ 김순은 위원장 약력 △65세 △강원 춘천 △춘천고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학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켄트주립대 정치행정학 박사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


대담 =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1기 위원회가 마무리됐다. 성과는.

▲지방이양일괄법 통과가 대표 성과다. 중앙이 쥐고 있던 400개 사무를 한꺼번에 지방으로 이양하는 법이다. 이 법은 형식과 내용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형식 면에서는 46개 법률을 하나의 법률로 묶어 한꺼번에 개정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때 처음 제안됐다. 일괄법 형식이 아니었다면 16개 부처 소관의 46개 법률을 하나씩 고쳐야 한다. 절차적으로 매우 빨라진 것이다. 내용도 큰 의미가 있다. 지역 체감도가 높은 사무들이 지방으로 이양됐다. 국토교통부로 먼저 올라갔다가 기초지자체로 내려왔던 '지역개발부담금'도 이제 시·군·구가 직접 걷는다. 새마을금고 관리 인허가도 중앙에서 광역 시·도로 이양됐다. 해양수산부가 권한을 갖고 있는 전국 60개 항만 가운데 총 35개 항만 시설의 개발권과 운영권한도 자치단체로 이관된다. 해수부가 큰 결단을 해줬다. 이번 이양일괄법은 지난 정부에서 발굴했던 이양과제들이다. 앞으로 지방에 맞는 사무를 추가 발굴해 2차, 3차 지방이양일괄법도 추진한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 자치경찰법은 아직 국회통과 전이다.

▲그렇다. 이 두 가지 법을 지방이양일괄법과 함께 '자치분권 3법'으로 명명했는데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30여년 만에 추진되는 매우 의미가 큰 법이다. 지방자치제를 한 단계 도약시켜줄 법이다. 주민자치 활성화와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통한 주민 주권 구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주민이 직접 조례를 발의하는 주민조례발안제를 도입하고 주민감사, 주민소송 기준연령도 19세에서 18세로 낮추도록 했다. 지방의회의 의회사무 기구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전문인력 확보, 부단체장 증원 등을 통해 지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도 중요하다. 자치경찰제 도입을 담은 경찰법 개정안도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이미 검경 수사권 조정이 끝나서 권력구조 개편이 돼있다. 자치경찰이 마지막 퍼즐이다. 여당 원내대표 면담에 이어 어제(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만나 조속한 법 처리를 당부했다. 늦어도 5월에는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만 바라볼 순 없다. 하위법령 개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행정부 결정만으로 추진 가능한 사안들은 대통령령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해나가고 있다. 작년 7월 시행된 자치분권사전협의제가 대표적이다. 중앙부처가 지자체 자치권을 훼손할 여지가 있는 법령을 제정할 때 반드시 행안부와 협의토록 했다. 중앙정부가 법을 만들면서 해당 부처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막는 제도다. 이미 500여건을 심의해 20여건에 대해 개선의견을 제시했다. 올해도 대통령령 개정만으로 가능한 부분들을 중점 추진할 방침이다.

―특례시를 둘러싼 논란도 크다.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하는 내용이 앞서 언급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담겨있다. 인구 100만에 약간 못 미치는 지자체들과 전주시, 청주시 등과 같이 인구는 100만에 한참 못 미치지만 도청 소재지로 중추도시 역할을 하는 곳들의 특례시 지정 요구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구 100만 이상 기준은 정부안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수정될 수도 있다. 현재 변화하는 인구 규모나 행정수요 등에 따라 대도시 인정 기준에 대한 보완 검토가 필요하다는 데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특례시 제도는 광역시 제도가 드러낸 한계로 인한 것이 배경이 아닌가 싶다. 1988년에 도입된 광역시 제도는 장점도 있지만 적잖은 단점도 있다. 광역시가 되면 '도'에서 떨어져나간다. 재정적으로 독립한다는 의미다. 세금을 낼 인구가 많은 도시가 떨어져나가니, 남은 동네들이 어려운 처지가 된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제안한 이유다. 이 같은 광역시의 대안이 특례시 제도라고 본다. 특례시는 떨어져나가지 않는다.

―인구감소 문제를 겪는 군들이 '특례군'도 요구한다.

▲특례군보다는 '복지특구' 개념을 고민하고 있다. 현 사회복지 시스템에서는 지방정부 대응자금이 많이 든다. 재원이 부족한 기초지자체가 중앙정부 복지정책을 따라가다 보니 복지지출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복지특구' 개념 도입을 통한 재정특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산 북구가 그 예다.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이 북구를 '복지특구'로 지정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226개 기초지자체 중 사회복지비 예산 비중이 71.4%로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재정자주도는 29.2%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어서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 밖에도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들거나 지자체 형태를 다양하게 하는 방향으로 종합 검토해봐야 한다. 얼마 전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연구원, 지방세연구원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관심사가 똑같더라. 올해 연말쯤 되면 큰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자체 형태 다양화는 왜 필요한가.

▲우리나라는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 이후 모든 지자체가 '기관분리형'으로 운영돼왔다. 의결기관인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인 장이 대립하는 구조다. 지자체별로 사회적 여건이 다른데도 획일적 모델을 적용한 것이다. 현재 광역 시·도는 총 17개다. 세종시 인구는 37만명, 제주도는 60만명인 데 비해 가장 큰 경기도는 1300만명에 달한다. 기초 시·군·구는 226개다. 인구가 9000명으로 가장 적은 울릉군부터 인구 124만명의 수원시까지 모두 동일한 형태로 운영된다. 인구규모, 재정상황 등 지역별 여건에 맡게 기관 구성을 다양하게 해 효율적 지방자치를 실현하자는 거다. 기관 형태 선택도 주민에 맡긴다. 인구가 줄어드는 농산어촌의 경우 기관 통합형을 고민해볼 수 있다. 군의원만 뽑고 그중에서 군수를 뽑는 방식이다. 나머지 군의원들이 집행부에서 국장을 맡으면 기관 운영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의회―책임행정관형 △시장―의회형 △주민총회형 △위원회형 중 하나를 지역주민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영국 지자체들도 △의원내각형 △시장―내각형 △위원회형 등 다양한 기관 구성 선택이 가능하다.

―2단계 재정분권도 과제다.

▲지난해 1단계 재정분권이 실현돼 올해 8조5000억원이 지방으로 이양된다. 그간 과거 정부들 모두 재정분권을 말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다. 2단계 재정분권안 마련을 위해 현재 각 부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TF가 구성돼 오늘(19일) 12차 회의를 진행했다. 합의안은 산통을 겪을 것 같지만 적어도 3월 말에는 위원회 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정부의 '자치'는 무엇이 다른가.

▲1991년부터 지금까지는 단체장 중심의 자치였다. 국민이 단체장과 의원을 뽑은 후 '그들이 알아서 잘해주겠지'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문재인정부 이후 자치분권의 핵심은 구성원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다. 주민들이 책임감을 갖고 선진화된 민주의식을 양성하고 효율적 시스템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꿔나가자는 의미의 차지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문제는 아니다. 자치는 머리로 하는 것이아닌 일종의 훈련이다. 스킨십을 쌓아야 한다.
10년에서 멀게는 20년씩 걸린다고 본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이미 국민들의 자치역량이 많이 성숙됐다고 본다.

정리=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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