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숭고한 희생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찾는다" 위험 무릅쓰고 비무장지대 들어가는 후배전우들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김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6 17:20

수정 2020.02.27 08:36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2007년부터 영구사업 된 유해발굴
매년 3∼11월 전국 82곳서 작업
비무장지대 지뢰·불발탄 제거 위해
공병부대·수색대 등 우선 투입
한사람이 하루 8m만 작업 가능
비교할 유가족 DNA 없을때 안타까워
1만구 이상 찾았지만 138구만 확인
허욱구 단장 "시료 채취 더 힘쓸 것"
지난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25 50주년을 맞아 육군본부가 임시사업으로 시작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2007년 국방부 예하부대에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면서 영구사업이 됐다. 국유단은 현재까지 1만여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38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지난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25 50주년을 맞아 육군본부가 임시사업으로 시작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2007년 국방부 예하부대에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면서 영구사업이 됐다. 국유단은 현재까지 1만여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38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6·25 전사자 중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분들이 대한민국 전 국토에 있습니다. 그분들을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고 국립현충원에 모시는 일이 저희의 임무입니다." 6·25전쟁을 치른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격전지다. 지난 2000년 6·25 50주년을 맞아 육군본부가 임시사업으로 시작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2007년 국방부 예하부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돼 영구사업이 됐다. 국유단은 6·25 전사자를 약 13만3000명으로 파악하고 남한지역에서 8만3000여명, 북한지역에서 3만여명, 비무장지대에서 1만여명이 전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6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국유단은 매년 3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전국 82개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6·25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발굴을 해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당초 남북이 9·19 군사합의를 통해 화살머리고지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하자고 했으나, 북측의 응답이 오지 않아 지난해 4월 1일부터 11월 29일까지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서 우리군 단독으로 유해발굴을 했다. 남북공동 작업이 결렬돼 아쉬움을 남겼지만, 국유단은 후방지역에서 유해발굴을 할 때와 비교해 비무장지대 작업에서 단위면적당 35배 이상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30㎏ 보호장구, 상시 착용

국유단의 작업은 본격적 임무인 발굴에 앞서 해당 지역에 대한 기초작업을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주로 격전지 위주로 유해발굴에 나서다보니 지뢰와 불발탄 등이 매설돼 있어 여전히 위험이 산재한 지역이다. 특히 화살머리고지가 있는 비무장지대는 많은 격전이 있었고, 1953년 7월 23일 휴전 이후 군사분계선 기점으로 남북 각각 2㎞ 사이에 사람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기 때문에 지뢰와 불발탄 등의 수도 많다. 그래서 공병부대와 수색대, 폭발물처리반(EOD)이 우선 투입되는데 이 작전은 한 사람이 하루에 8m 남짓만 진행할 수 있는 매우 신중하고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기초작업 이후 국유단 장병과 전방부대 유해발굴 장병들이 투입돼 함께 작업을 한다.

유해발굴 임무에 투입되는 장병들은 의도치 않게 '몸짱'이 된다.

이들은 보통 새벽 5시 이전 기상해서 오전 7시30분부터 8시30분 사이 작전지역에 투입된다.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간은 오후 3시30분께다.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본지와 만나 "장병들이 유해발굴 임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건 체력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고지에서 유해발굴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1~2시간 정도 산을 올라야 하고,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하루종일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또 우발적 위협에 대비해 보호의, 지뢰화, 헬멧, 방탄조끼 등 총 무게 30㎏에 달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작업을 하는데 이 또한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장병들은 식사할 때나 휴식할 때도 장비를 모두 착용한다.

허 단장은 국유단 병사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유해발굴에 참여한 병사들은 정신교육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각자가 느끼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그는 "간부들은 직업으로 선택해서 온 인원들이니까 자신이 희망해서 온 만큼 스스로 일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데, 장병들은 의무복무를 위해 군에 와서 어려운 작업을 하지만 선배 전우에 대한 감사함과 국가에 대한 소중함으로 작업에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허욱구 단장. 사진=박범준 기자
허욱구 단장. 사진=박범준 기자
■유가족 DNA 턱없이 부족

국유단 장병들은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열심히 발굴했지만 유해를 발굴하지 못하거나, 발굴한 유해를 얼른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해 느끼는 아쉬움이 더 크다고 한다.

국유단의 구호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다.

결연한 구호에서 느낄 수 있듯 국유단의 임무는 70년가량 싸늘한 지하에 계신 분들을 찾아 이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는 것이다.

유해를 발굴하면 우선 신원확인을 하는데, 가장 대표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은 DNA 상호 비교검사다. 하지만 문제는 전사자의 DNA를 가지고 있지만, 이와 비교할 유가족의 DNA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허욱구 단장은 "DNA 시료 채취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면서 "인근 보건소에서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하는 건데, 타액만 채취하면 실질적으로 검사가 끝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간단한 절차이지만 유가족들이 이 자체를 몰라서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허 단장은 "지난해 국유단이 제주에서 6·25 전사자 유가족 초청행사를 했는데, 행사 마지막 날 한 어르신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어르신이 전날 방영된 지역 뉴스를 보고 부랴부랴 찾아온 것이다. 허 단장은 "국유단이 여러 경로로 유가족 시료 채취를 홍보를 하고 있지만 이 어르신처럼 여전히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유가족 DNA가 확보되면 대조작업을 통해 단기간에 유해가 유가족에게 인도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신원확인에만 7~8개월이 걸린다.

허 단장은 "전사자 유해를 1만구 이상 발굴했는데 이 중 138분만 신원확인이 됐고, 나머지 분들은 아직 가족 품으로 못 돌아갔다"고 말했다.


아직 가족 품에 안기지 못한 유해들은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선재에 모셔져 있다. 국유단은 올해 중 신축공사를 완료해 더 넓은 장소에서 유해를 보관하고, 유전자 검사를 하는 인원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유해를 감식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허 단장은 "작년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도 우리나라 전 지역을 비롯해 화살머리고지 일대 유해발굴작업도 계속 추진할 예정"이라며 "국유단 차원에서 유전자 시료 채취 확보의 중요성도 지속적으로 홍보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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