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중국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02 17:30

수정 2020.03.02 17:30

코로나19발 대지각변동
中과 교류많은 나라 직격
협력하되 과공은 안 된다
[구본영 칼럼]중국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중국발 '코로나19 지진'이 세계적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진앙지 후베이성 우한과 가까운 탓일까. 동북아에서 중국과 관광·통상 교류가 많은 한국과 일본이 확진자 배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유럽의 이탈리아와 중동의 이란도 확산세가 두드러진다. 정작 중국과 국경을 맞댄 몽골이나 미얀마에는 확진자가 거의 없다. 몽골은 코로나 사태 초반부터 중국 경유자를 막았고, 미얀마도 2월 초부터 중국 관광객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해 왔다. 반면 미국의 제재를 피해 중국에 기대고 있던 이란과 주요 7개국(G7) 중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참한 이탈리아는 큰 화를 부른 꼴이다.


우리 또한 코로나 사태 초반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았다. 확진자가 무섭게 늘자 여론도 싸늘하다. "문 열어놓고 모기 잡겠다는 격"이란 지적과 함께.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긴 하다. 대중 무역 의존도가 워낙 커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했을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은 법이다. 언젠가 문 대통령은 "한·중은 운명공동체"라고 했었다. 다만 이는 외교 수사로 그쳤어야 했다. 실제로 과도하게 중국을 배려하다 양국이 '바이러스 공동체'가 되고 있다면 이보다 허망한 일도 없다.

중국에 대한 과공(過恭)이 친중·반미 코드와 맞닿아 있다면 더 큰 문제다. 며칠 전 외교나 보건 전문가가 아닌 추미애 법무장관이 미국의 중국인 입국 차단을 "정치적"이라고 폄하했다. 문재인정부를 엄호하려는 의도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이 거꾸로 한국인 입국을 막는 현 시점에서 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으로 비친다.

한·중은 반만년 동안 경쟁과 협력의 이중주를 연주해 왔다. 우리가 대륙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때도 많았다. 다른 한편으로 한·당(漢唐) 등 중원을 제패한 대제국들에 부지기수로 침략을 당했다. 현대사에서도 북한을 부추겨 6·25전쟁을 일으키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대군을 보내 남북통일을 가로막은 '중공'이 있었다.

물론 1992년 수교 이후 중국 시장이 한국 경제에 큰 보탬이 됐다. 하지만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주고받기'였다. 중국도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에서 중간기술 등 얻을 게 있어 시장을 내준 것이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간부들에게 '박정희 모델'을 학습시켰다는 비화가 이를 말해준다.

중국은 사드 추가배치 포기 등 '3불(不) 합의'에도 한국 경제를 죄는 '한한령'(限韓令)을 온전히 풀진 않았다. 방역주권을 포기하며 다시 굴신한들 시진핑 정부가 감읍할 리도 없다. 한국인 입국제한을 따지자 "외교보다 더 중요한 건 방역"이라고 일축하는 판이니, 코로나 발원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대중가요의 한 소절이다. 노랫말처럼 청춘 남녀 간엔 한쪽의 일방적 구애가 순수의 징표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안위가 걸린 외교는 달라야 한다. 이번 사태를 잘못 다루다 중국보다 경제에선 앞섰다는 자부심마저 구겨질까 걱정스럽다.
맹목적 친중이나 혐중 등 양 극단은 피해 주권을 지키려는 결기를 갖고 한·중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좌표를 새로 설정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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