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뉴스에만 나오는 '착한 건물주'... 현실은 다르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04 15:24

수정 2020.03.04 15:24

자영업자 50명 물어보니... 임대료 인하 '남의 일'
'착한 임대' 건물주 세제혜택에 박탈감 호소도
서울시 "공공상가 넘어 민간영역 지원 준비"
3일 오후 상가가 밀집한 염창역 인근 거리 풍경. 퇴근길에 들르는 사람이 많았던 이 골목은 평소보다 찾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 사진=김성호 기자
3일 오후 상가가 밀집한 염창역 인근 거리 풍경. 퇴근길에 들르는 사람이 많았던 이 골목은 평소보다 찾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 사진=김성호 기자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전국 임대인들의 자발적 임대료 인하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임대료를 인하하는 건물주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전주 임대인들의 상생선언 현장. 출처=fnDB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전국 임대인들의 자발적 임대료 인하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임대료를 인하하는 건물주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전주 임대인들의 상생선언 현장. 출처=fnDB

[파이낸셜뉴스] #양천구 목2동에서 전골가게를 운영하는 신모씨(54·여)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매출이 7할 이상 줄어들었다. 감염이 보균자와 함께 식사하는 중에 이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골과 같은 음식 소비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200만원이 넘는 임대료가 부담된 신씨는 건물주에게 연락해 사정해봤지만 “잘 벌 때 벌어둔 건 어떻게 했나”라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어려울 땐 사정을 봐주기도 했지만 지난해 젊은 사람으로 (건물 소유가) 바뀌면서부터는..."이라며 신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뉴스에만 나오는 '착한 건물주'... 현실은 독촉만
일명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화제다.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 자영업자에게 임대료 전액 또는 일부를 감면해주는 건물주들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자영업자가 없으면 건물주 수익도 줄어든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고통을 나눈다는 취지다. 정부는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는 건물주에게 세제혜택을 주겠다는 발표까지 내놨다.

하지만 일선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착한 건물주를 만나는 게 복권당첨 같다는 불만이 새어나온다.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것과 달리 주변에 착한 건물주를 만났다는 자영업자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지난달 중순부터 이달 4일까지 서울 전역 식당과 카페 50여 곳을 찾아 물은 결과 임대료 인하혜택을 본 곳은 서울시 공공상가에 입점한 식당과 카페 몇곳 뿐이었다. 50곳 가까운 상가 업주들은 건물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으며 먼저 건물주에게 의향을 물은 일부 자영업자들도 차가운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다.

장사가 안 돼 임대료를 다 내지 못한 자영업자는 건물관리인으로부터 독촉문자를 받기까지 한다.

임대료 입금이 늦었다가 독촉문자를 받았다는 이모씨(30대)는 “깎아준다고 하는 데는 죄다 큰 상가인데 정말 지원이 필요한 영세업자들은 애초에 그런 곳에 못 들어간다”며 “자영업자는 세금 미납했다고 대출까지 막는 상황인데 건물주 세금혜택 준다는 뉴스가 나오니 웃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재택근무 확대로 손님이 급감한 공덕역 인근 상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직장인 점심손님이 대부분이던 상황에서 당장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400만원을 훌쩍 넘는 월세는 요지부동이다.

한 중식당 사장은 “착한 건물주가 있다고 뉴스는 나오는데 주변에서 본 일이 없다”며 “자영업자가 다 죽으면 건물에 들어갈 사람이 없으니 자기(건물주) 일이기도 한데 10% 깎아주는 것도 대단하다고 칭찬을 받는 게 어이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험도 통계도 없다' 자영업 각자도생
프랜차이즈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가맹사업 본부들엔 매일 같이 대책을 마련하라는 점주들의 항의가 쇄도한다. 한 가맹본사에 항의차 방문한 업주는 "임대료랑 인건비가 500만원이 넘게 드는데 본사에선 로열티 해봐야 몇십 안 되는 것만 깎아주고 생색을 낸다"며 "위기관리 능력이 있다고 그렇게 홍보하더니 위기가 닥치니 알아서 생존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500개가 넘는 가맹점을 둔 한 업체 대표는 “건실한 자영업자들도 지금 같은 국면에선 3개월을 버티기가 힘들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가장 부담이 되는 건 고정비고 역시 수 백 만원씩 되는 임대료인데 너무 금액이 크다보니 선뜻 지원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편 감염병이 도는 상황에서 자영업자가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이 있어야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자영업자가 감염병으로 가게 문을 닫을 시 이를 보장해주는 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연구원도 최근에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연구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며 “감염병으로 얼마나 피해가 발생하고 얼마나 자주 병이 도는지 이런 조사가 안 돼 있어 회사차원에서도 상품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도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민간 상가 임대료에 대한 조사가 충실하지 않아 현황파악이 어려워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가쪽은 애초에 모수나 통계 잡기가 어려워서 비율도 조사하기 어렵고, 임대료도 신고제가 아니다 보니 공공기관에서 보유한 자료가 많지 않아 전체적인 조사나 실태파악이 안 된다"며 "서울시 차원에서도 착한 임대인을 유인하기 위해 지원을 하는 방안을 준비 중에 있다"고 전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