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논단] 올해 봄꽃은 더 화사할 것이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04 17:50

수정 2020.03.04 17:50

[fn논단] 올해 봄꽃은 더 화사할 것이다
3월이다. 봄이 왔다. 봄의 시작은 갖가지 꽃으로 선포되기 마련이다. 이달 중순이면 남녘에서부터 개나리가 샛노란 입술을 다닥다닥 삐죽일 게다. 분홍빛 진달래가 뒤질세라 그 뒤를 바짝 따라 달려오겠지. 필자 눈에는 팝콘으로만 보이는 매화와 줄기에 옹기종기 매달린 살구꽃이 벌써부터 먼저 나가겠다고 성화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먼저라고 말하기도 미안하다.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는 사나운 눈보라 가운데서도 진즉 망울을 속에 품고 노란 물감 풀어놓을 준비를 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다 3월 말 언제쯤이면 거리를 뒤덮은 벚꽃에 온 세상이 벼락치듯 환해져 잠에서 깨어난 내 눈을 화들짝 놀라게 하리라. 여기에 백만촉 달빛 같은 목련까지 만개하면 우리 가슴은 봄의 절정으로 치닫겠지.

요즘이야 코로나라는 괴물이 세상을 점령한 것 같아 무섭고 우울하지만, 그네들도 조만간 갖가지 봄꽃에 정복될 운명이다. 봄꽃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자 사랑과 연민이다. 코로나에 치료약이 없다 한들 면역이란 이름의 갑옷에는 맞설 수 없음이 당연지사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아기를 캥거루처럼 꼭 안고 코알라처럼 등에 찰싹 붙여 키워왔다. 그게 아기는 물론 엄마까지 저도 모르게 면역력을 키운 거라니 신박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민족의 캥거루 케어가 면역력을 높인 것은,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로스가 쏜 황금화살에 맞아 남녀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하고,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으로 상징된다. 과학자들은 사랑을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호르몬 옥시토신의 엔돌핀 작용이라고 설명하지만, 문과로 굳어버린 내 머리에는 선뜻 들어오지 않는다. 사랑이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사랑을 만들고 키워낼 수 있다는 거다. 일설에는 남녀가 키스로 에로스의 화살을 명중시키면 피부가 좋아진다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신체접촉이 특정 단백질을 늘려 면역조절 사령관으로 불리는 T임파구를 증가시킨다는 설도 유력하다. 코로나 때문에 낯선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게 일상이 돼버렸지만 면역력을 강화하려면 친밀한 사람 간에 최대한 몸을 가까이 해야겠으니, 삶이 역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전염병을 말하자면 허준 선생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이 1613년 편찬한 '신찬벽온방'은 임진왜란 무렵 민생을 피폐하게 만든 온역(溫疫·장티푸스)의 대책을 설파했다. 현대 의학지식과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특이하게도 선생은 예방법의 하나로 부자들이 재물을 내놓고 이웃이 병자 가정의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등의 처방을 제시했다. 공동체 의식과 자존감은 사랑의 몫이니 그 사랑을 퍼뜨리자는 뜻이다. 작금에도 딱 들어맞는 처방이라, "힘내라 대구경북!" 응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불안이 엄습하고 있는 올봄은 사랑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봄꽃이 색색으로 온 천지를 물들이고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곡조가 귀를 간지럽히는 사이, 우리는 꽃내음에 발맞춰 사랑의 행진을 하자. 공동체 사랑의 도도한 물살로 못된 괴물을 깨끗이 쓸어버리자. 제 아무리 세 보이는 코로나라도 북풍한설을 뚫고 인고 끝에 다가온 봄꽃 속 따뜻한 사랑에는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유능제강(柔能制剛), 세상의 이치다.
올해 봄꽃은 어느 해보다 더 화사할 것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