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은행의 '키코 배상'이 배임죄인가

최근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에 대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조정안에 대해 해당 은행들이 '수용 불가'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키코는 원본손실 위험이 높은 파생금융상품인데, 환차손을 우려한 중소기업들이 지난 2007년 이후 집중적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급등으로 중소기업들은 약 3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고 줄도산했다. 이에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해 12월 6개 판매 은행에 대해 피해기업 4곳에 약 255억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는데, 우리은행만 이를 수용해 지난 2월 배상을 끝냈다.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배임죄' 등을 이유로 배상을 거부했고, 나머지 은행들도 배상을 주저하고 있다.

그런데 금감원 분조위 결정을 수용하는 것이 과연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배상에 부정적인 은행들의 주장은 대법원이 계약의 불공정성이나 사기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법적인 책임이 없으며, 만일 배상할 경우 경영진이 배임 리스크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에선 2013년에 나온 대법원의 키코 사건 판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대법원의 판단은 구체적 사안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오히려 은행들이 키코 분쟁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고객은 물론 시장에서 신뢰를 얻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이 분조위 결정에 따라 배상한다고 해서 은행에 일방적으로 손해만 입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배임죄의 '고의' 여부에 대해 판단할 때 경영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기업이 처한 상황, 손실발생 및 이익발생의 개연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에 비춰볼 때 이사회가 분조위의 조정안을 수용하는 결정은 경영판단의 범위에 속할 가능성이 높아 배임에 해당할 소지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배임죄'를 이유로 들고 있는 이면에는 이번 기회에 감독의 고삐를 죄고 있는 금감원의 힘을 빼겠다는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시각도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선진금융시스템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은행들이 감독당국과 힘겨루기나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키코는 물론 최근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으로 수많은 금융소비자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분쟁 당사자인 은행들이 외면해선 안된다.

이번 키코 관련 분쟁조정의 결과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해당 은행들의 몫이다.

그러나 문제가 된 사건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어야만 피해보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은행들이 남소(濫訴)의 횡포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남소 방지 제도를 두고 있는데, 은행들의 소송 만능주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제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은행들은 하루빨리 결자해지의 자세로 지루한 키코 분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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