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코로나發 돈맥경화…채안펀드·P-CBO·신속인수제로 뚫는다

뉴스1

입력 2020.03.24 05:55

수정 2020.03.24 05:55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3.1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3.1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28일 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일대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2017.12.2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28일 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일대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2017.12.2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정부서울청사 전경. 2017.8.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정부서울청사 전경. 2017.8.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전민 기자,김승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자금시장 곳곳에서 신용경색(돈가뭄)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채권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안정화 대책들이 효과를 발휘할지 주목된다.

정부는 우선 '10조원+α(알파)'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이하 채안펀드) 조성과 3년 간 6조원대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을 결정했다.
채안펀드 투자대상에는 최근 신용경색 우려가 제기된 기업어음(CP)도 포함된다. 정부는 과거 대규모 유동성 위기에 처했던 하이닉스, 현대상선, STX그룹 등에 적용했던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발 신용경색을 막기 위한 정부의 3종 세트가 출격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또한 대형 증권사가 ELS(주가연계증권) 자체 헤지거래(위험회피)와 관련해 주가 폭락에 따른 달러 증거금 마진콜(더 내라는 요구)로 비상이 걸리자 한국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위해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 증권사를 현행 5개사에서 16개사로 확대했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단기자금시장에서 대규모 긴급 자금을 마련하느라 CP 금리가 급등하는 등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심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들을 통해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는 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를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보다 구체적이고 과감하게 제시해 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불안한 4월 회사채시장부터 CP·여전채 신용경색 조짐까지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2월 말까지 만기인 회사채 총 50조8727억원 중 4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총 6조5495억원이다. 이를 4~6월(2분기)로 확대해 보면 14조7475억원 규모에 이른다. 보통 만기가 도래하면 새로운 회사채를 발행해 만기 회사채를 갚는 차환 방식을 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회사채 시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발 신용경색 조짐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시장은 긴장 상태다. 지난 23일 기준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금리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를 뺀 신용 스프레드는 85.7bp로 전날(83.8bp)보다 1.9bp 더 커졌다. 스프레드 확대는 국채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한 회사채가 시장에서 외면받아,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CP(91일물) 금리는 23일 기준 전날보다 9bp 올라 1.55%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50bp 기준금리 인하 직후 1.53%에서 1.36%까지 하락했으나, 지난 19일(1.41%)과 20일(1.46%) 급등세를 보인데 이어, 전날도 9bp나 치솟으며 금리인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또한 OK캐피털과 한국투자캐피털 등 캐피털사들은 자금조달 수단인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신규대출을 최소화하기 시작했다. 중·저신용자 고객이 많은 캐피털사 특성상 코로나19 사태로 부실 대출자산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투자자들도 이런 이유로 여전채 투자를 꺼리고 있다. 23일 기준 여전채 3년물(무보증 AA) 금리는 연 1.617%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0.50%포인트)을 단행한 지난 16일 연 1.440%보다 0.177%포인트 올랐다. 캐피털사 입장에서 자금조달을 위한 비용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증권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증시 폭락에 따라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된 달러 마진콜이 증권사들에 수조원대로 발생해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에 증권사들은 최근 금융당국에 SOS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채권시장에서 기업들이 제대로 차환하지 못하면 파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가) 빨리 (자금을) 만들어 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안펀드 10조원+α·P-CBO 6.7조원…RP 대상도 확대

정부는 일단 채안펀드 조성과 P-CBO 발행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채안펀드는 채권시장 경색으로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의 유동성을 지원하고, 국고채와 회사채의 과도한 스프레드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설립하는 펀드다. 지난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0조원 규모로 조성됐다.

이번 채안펀드 규모도 10조원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008년에 10조원 규모로 했으니 상식적으로 커지지 않겠느냐"면서 "최소 그 정도(10조원)"라고 설명했다. 채안펀드 투자대상에는 CP가 포함된다. 은 위원장은 "채안펀드는 채권을 사지만 남는 자금으로 CP도 살 수 있다"며 "(채안펀드 운용을) 융통성 있게 하겠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채안펀드 참여 금융기관에 출자액의 50%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채안펀드의 물주는 한은인 셈이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 자원을 활용한 1조7000억원을 포함해 3년 간 6조7000억원 규모로 P-CBO를 발행하기로 한 상태다. P-CBO는 낮은 신용도로 회사채를 발행하기 힘든 기업의 회사채 차환 발행 또는 신규 발행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2000년과 2003년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돕기 위해 이를 발행했다.

달러 마진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대형 증권사들은 한은의 지원 대상이다. 한은이 RP를 직접 매입해 증권사들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한은은 23일 RP 대상 증권사를 현행 5개사에서 16개사로 확대했다. 한은은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 대상 증권사와 국고채전문딜러(PD)로 선정된 증권사까지 RP 대상 기관으로 포함했다. RP 대상증권에 일부 공기업 특수채도 넣었다.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 포함될까…"특단의 대책 필요"

정부가 이날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 활용 방안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이 제도는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기업이 사모 방식으로 또 다른 회사채를 발행하면 이를 산업은행이 인수해주는 것을 말한다. 회사채 물량의 80%는 산업은행, 20%는 채권은행과 기업이 나눠 인수한다. 이는 외환위기 시기인 지난 2001년 6개 기업(하이닉스·현대건설·현대상선·현대유화·쌍용양회, 성신양회)을 대상으로 1년 간 약 3조원 규모로 처음 시행됐다. 2013년에는 건설·조선·해운·철강 등 경기취약 업종의 한계기업에 모두 6조원 가량이 투입됐다.

올해 4월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 중에는 코로나19로 여객 수가 급감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2400억원)을 비롯해 롯데칠성음료(2200억원), 한일홀딩스(1500억원), 만도(1500억원), 하이트진로(1430억원), CJ대한통운(1200억원), 호텔롯데(1200억원), 현대건설(1000억원) 등이 있다.

이번에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가 시행된다면 2001년, 2013년 때보다도 그 규모와 범위가 커질 수 있다.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업종이 한두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항공, 관광, 유통 등 업종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산업은행이 특정 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해주기 때문에 특례 논란을 낳을 수도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4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한 뒤 채권시장 안정 등을 위한 대책을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접 브리핑할 예정이다. 회사채 시장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정부 대책에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회사채 등을 매입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점도 산업은행이 나설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채안펀드는 최근 여러가지 경제 정책에서 우선순위와 중요도가 가장 높은 정책"이라면서 "(신용경색 해소를 위해) 일단 15조원 정도만 만들어주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봤다.
이어 "일단 채안펀드와 P-CBO만으로도 시장 안정화에는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지원 규모 등이 조금 더 전향적이고 전폭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4월 만기가 많이 몰린 상황이기 때문에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를 포함한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교수도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 등)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그때 그때 시장 상황을 보고 (시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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