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포퓰리즘 바이러스, 코로나보다 무섭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30 16:53

수정 2020.03.30 16:53

치명률 세계 최고 이탈리아
역대 포퓰리즘 정권이 쌓은
모래성 의료복지제도 실상
[구본영 칼럼]포퓰리즘 바이러스, 코로나보다 무섭다
지구촌에 코로나19 안전지대는 없다. 이탈리아의 참상을 보라. 우한을 진앙지로 둔 중국보다 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난 격이다. 얼마 전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의 한 지역신문은 사망자가 급증하자 무려 10개 면을 부고란으로 채웠다.

코로나19 발원지 중국을 추월한 이탈리아의 누적 사망자 수는 지난 28일 기준 1만명을 넘어섰다. 누적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인 '치명률'은 10.84%로 세계 최고였다.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참여해 중국과 교류가 많았기 때문일까. 확진자가 베수비오 화산처럼 분출한 지 오래다.


확진자가 많은 서유럽 주요국의 치명률은 현재 이탈리아>영국>프랑스>독일 순이다. 독일은 세계 최저다. 독일에선 사후 코로나19 검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등 다른 요인도 있다. 그럼에도 지난주 중반 이탈리아의 치명률이 독일(0.38%)의 24배가 넘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탈리아식 의료사회주의는 고장났다고 봐야 한다.

그 속사정은 유럽연합(EU) 통계청 데이터베이스에서 읽힌다. 독일은 의료비, 병상, 인력에서 이탈리아를 압도한다. 100명당 병상은 독일이 8개인데 이탈리아는 3.18개에 불과하다. 인구 1000명당 의사 비율은 4.25명대 3.99명으로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이탈리아는 고령자가 대종이다. 젊은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떠나면서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은 공공서비스 중심으로 의료체계가 굴러간다. 사회민주주의 의료복지 모델을 지향하고 있지만 문제도 적잖다. 정부가 시민의 건강을 보장한다지만 의사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간단한 수술을 하려 해도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민간병원과 개인 의료보험 중심인 미국은 이와는 판이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세계 최고 의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돈이 없어 의료보험에 들지 못한 사람들(약 10% 인구)에겐 '그림의 떡'이다.

우리의 의료시스템은 서유럽과 미국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 국민 의료보험법 등 기초를 설계하고, 대상을 확대해 노태우정부 때 완성한 전국민의료보험제도다. 이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세계적 비교우위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주 중반 한국의 코로나19 치명률이 이탈리아보다 8~9배 낮았다는 게 그 방증이다.

국민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이탈리아식 의료사회주의가 '속빈 강정'임이 확인돼서 그럴까. 이탈리아 언론들이 한국 의료시스템을 부러워하고 있다. 역대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권들이 쌓아 올린 '의료 복지국'이 모래성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우리의 반쪽 북한의 민낯을 보라. 100% 무상의료를 선전하고 있지만, 실상은 기초 의료용품도 없어 일제 맥주병에 수액을 담아 쓸 정도이니…. 분명한 건 국민의 생명은 권력자의 혀가 아니라 의료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4·15 총선을 앞둔 국민이 의료 분야뿐 아니라 모든 유형의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할 이유다.
공짜 의료 말고도 '아니면 말고'식 인기영합 공약만 난무할까 걱정스럽다. 철학자 칼 포퍼가 그랬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고. 유권자들이 분별력을 갖고 온갖 사탕발림 공약들에 속지 말고 현명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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