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술만 마시면 가정폭력" 아버지 살해한 아들...어머니 '오열'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1 12:02

수정 2020.04.01 12:09

아들 "공소사실 인정..유년시절부터 학대 당해"
어머니·여동생, 눈물의 선처 요구 
배심원 9명 가운데 6명 '집행유예' 의견
재판부 "배심원 다수 의견 및 여러 정황 참작..집행유예 선고"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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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술에 취하면 가정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우발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 자체는 패륜적이고 반인륜적이나 피해자인 아버지가 과거부터 술에 취하면 폭언과 폭행을 일삼자 가족들을 대신해 아버지를 홀로 돌본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공소사실 인정..가혹행위 고려해야"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마성영 판사)는 지난달 31일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모씨(31)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형법 제 259조에 따라 존속상해치사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 이를 감경한 후 집행유예를 결정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서울 강북구 주거지에서 아버지와 술을 마시다 말다툼을 벌인 뒤 아버지의 가슴 등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당시 "아버지는 평소에 조용하신데 왜 술만 마시면 가족을 괴롭히냐"며 "혹시 내가 고칠 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말하자 아버지가 욕설을 하며 머리를 수 차례 때리자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과수 감정 결과 아버지의 사인은 '복강내 과다출혈'로 드러났다.

이씨 측 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사망한 아버지가 유년 시절부터 술에 취하면 이씨와 여동생, 어머니에게 가정폭력을 일삼는 등 여러 가혹행위가 있었던 점을 고려해달라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흉기 휘두르던 아버지.."그래도 가족이라서"
재판에서 검찰은 이씨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최후진술에서 "피고인이 술을 마시고 우발적인 감정으로 160㎝의 왜소한 체구의 아버지를 폭행했고, 과다출혈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애틋한 사정과 가정폭력을 당한 사정은 이해되지만, 이는 대부분 2010년 이전의 일"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이씨 측 변호인단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상습적으로 이씨와 가족을 폭행한 점, 가정폭력 문제로 함께 살던 어머니와 여동생이 2017년 집을 나간 이후 아버지가 흉기를 휘두르는 등 지속적인 가정폭력이 있었음에도 이씨가 아버지를 홀로 모시고 살았던 점, 범행을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씨는 이날 '어머니, 여동생이 집을 나갈 때 함께 나서지 않고 왜 아버지와 함께 지냈냐'는 재판부의 여러 차례 질문에 "그래도 가족이라서"라고 답했다.

이날 법정에는 이씨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증인으로 나와 이씨를 선처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 김모씨는 "아들이 어릴 적 부터 아버지로부터 여러 차례 학대를 당해 왔다"면서 "아들이 성장해 아버지보다 체격이 좋아진 이후에도 아버지가 폭력을 가하면 그대로 맞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제 이씨는 고교시절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낸 바 있다고 이씨 측 변호인은 설명했다.

배심원단 과반수 '징역형의 집행유예' 의견
이씨는 검찰의 구형 이후 최후진술에서 "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며 "저의 잘못된 행동으로 돌아가시게 한 점에 대해 매일 후회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홀로계신 어머니께 이 사건이 일어남으로 인해 갚지 모할 불효를 해 마음이 무겁다"며 "제가 저지른 이 죄의 무게를 잊지 않고 평생 속죄하며 아버지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담고 살겠다"고 진술했다. 이씨가 최후진술을 하는 내내 이씨의 어머니 김씨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재판부는 "아버지에 폭행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에서 범행 자체가 패륜적이고, 죄질이 중하며 반인륜적이라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국민배심원단 9명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지만 이 가운데 6명이 징역형의 집행유예, 나머지 3명은 징역형의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아버지)가 과거부터 술에 취해 폭언, 폭행을 일삼았고 이후 피고인이 홀로 아버지를 돌본 점, 범행 후 다소 늦었지만 119에 신고하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응급조치 한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며 "배심원의 다수 의견을 고려하고 여러 정황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해 선처한다'고 밝혔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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