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日 코로나 미스터리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1 16:51

수정 2020.04.01 16:51

아베 무대책에도 무덤덤
특유의 순응주의 또 작동
이상한 나라, 이상한 국민
[최진숙 칼럼]日 코로나 미스터리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군에 공식 항복을 선언한 날, 도쿄 풍경은 그로테스크했다. 궁성 앞 오열하는 젊은이들 사진은 훗날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당시 시내 거리엔 이상한 활력이 넘쳤던 모양이다. 작가 사카구치 안고(1906∼1955)는 "전쟁의 위대한 파괴 아래 운명은 있었으나 타락은 없었다. 무심했지만 충만했다"는 말로 그 순간을 기억했다. 사카구치는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황홀하게 그 아름다움을 응시했다"고 '타락론'에 썼다.


종전 직후 이 분위기는 미국인의 눈에 더 특이했을 것이다. 일본에 단 한번 가본 적 없으면서도 일본인의 기질을 정확히 꿰뚫어본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 '국화와 칼'에서 항복 직후 벽지 황량한 마을에서까지 감지된 "180도 전환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일본 점령 부대의 미군 장병은 이처럼 우호적인 국민이 죽을 때까지 죽창으로 싸울 것을 맹세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다." 베네딕트는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보이는 일본인의 놀라운 순응주의도 간파했다. "일본인은 목표달성이 불가능해진다고 판단하면, 실패한 주장을 바로 버린다. 언제까지나 집요하게 실패로 끝난 주장을 고수하는 성질이 아니다."

일본 문화평론가 야마모토 시치헤이(1921∼1991)가 분석한 일본인의 특성은 고유 전통과 사건·사고에 기반한다. 1977년 집필한 '공기(空氣)의 연구'에서 그는 일본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공기'라고 규정했다. "매우 강력하고 거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판단의 기준'으로,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공기 거역죄'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이 분명하다"고 썼다. '공기'는 어쩌면 내부 구성원들이 발명해낸 허구, 신화 같은 것일 수 있다. 전쟁을 결정한 것도, 수행한 것도 '공기'로 봤으며 항복선언은 순식간에 그 '공기'가 바뀐 것을 의미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초토화되는 국면에서 일본의 미스터리한 대응을 지켜보며 베네딕트와 시치헤이를 떠올려본다. 매뉴얼 강국, 절제의 국민성을 자랑하는 재난대응 1인자 일본의 최근 행보는 사실 쇼킹했다. 감염 배양접시로 불리며 세계의 조롱이 됐던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방역 대실패부터 놀라움을 자아냈다. 아베 신조 정부는 올림픽 개최 연기가 발표되기 직전까지 무검사·무대책으로 버텼는데 더 주목할 건 이에 적극 부응했던 일본인들의 혼연일체다. 올림픽 개최라는 '공기'의 주술에 걸려 이를 거스를 수 있는 일체의 행동들이 스스로 또는 공동으로 통제될 수 있었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올림픽 연기 결정 후 '공기'는 달라졌다. 3월 25일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감염 폭발의 중대 국면"을 선언했다. 기습 발표에 사재기 소동도 빚어졌지만 대부분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인 것 같다. 확진자는 기다렸다는 듯 급증세다. 인터넷상엔 정부의 부인에도 '도쿄 봉쇄설'이 계속 나돈다. 이 와중에 아베 지지율은 더 오르고 있으니 이 역시 기이한 조합이다.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다." '국화와 칼'의 첫 문장이다. 낯설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난해한 상대와 다시 미래관계를 논해야 하는 건 우리 운명이다.
지금 교류의 문은 급속히 닫히고 있다. 계속되면 우리 기업·경제가 아슬해진다.
더 늦기 전에 담대한 해법이 나와야 할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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