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시인은 8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광진을 지역 주민들에게 고 후보는 이런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달라”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조 시인은 “개인적으로 꿈이 두 개가 있었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멋진 사랑을 한번 해보겠다’는 것과 ‘나는 가난하든 어쨌든 시를 쓰며 살겠다’였다”며 “동시에 이뤄준 사람이 고민정씨고 더 이상 욕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민정씨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많이 받쳐주는 편”이라며 “고민정씨는 시를 쓰는 내가 세상에서 훔친 유일한 시다, 이런 말을 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진행자가 처음 고 후보의 출마를 반대한 이유를 묻자 “정치라는 게 험한 거라는 건 알고 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가셨고 노회찬 의원도 그렇게 가셨는데 세상에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보내고 싶겠냐”고 답했다.
이어 “청와대까지는 어떻게 이해를 했는데 청와대 일이 무지막지하더라”면서 “힘들긴 하지만 보람도 있고 험하다기보다는 고되단 그런 의미가 있었는데 정치는 험하고 그런 것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반대를 많이 했었다”고 덧붙였다.
반대 입장을 선회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행복이 대의라는 논리를 이길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서로 꾸준히 정치 얘기를 하면서 정치 개혁이나 개혁입법, 검경분리 등이 민주당에서 과반을 못 얻으면 후퇴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며 “그런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대통령이 이룬 많은 것들이 퇴보할 거란 걱정들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저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고민정 남편’이라고 적힌 점퍼를 입고 지역주민들을 만나면 어떤 반응이 있냐는 질문에는 “왜 이제 왔느냐, 오래 기다렸다”는 분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조 시인은 “2월 19일 전략공천이 확정됐고, 좀 늦게 지역을 돌기 시작했지만 지역을 돌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풀린 것 같다”면서 “어제도 벽치기 유세를 47회인가 했다”고 말했다.
벽치기 유세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문을 닫고 있어도 소리는 들을 수 있게 골목에서 유세하면서 조금씩 옮기면서 하는 것”이라면서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후보 목소리를 창을 통해서 들으면서 후보를 이해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유세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하루에 손 편지를 10통 가량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시인은 “일요일 유세 때 한분이 편지를 주면서 고민정 얼굴로 있는 광진에 와서 살고 싶어서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면서 “혼자 사는 여성이라 이사하기가 편해서 더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그런 마음들이 굉장히 고맙고 (고 후보가) 광진의 얼굴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조 시인은 1968년 생으로 경희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뒤 2000년 4월 시집 ‘사람은 가고 사랑은 남는다’로 등단했다. 고 후보는 조 시인이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11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kmk@fnnews.com 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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