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보건부를 신설하자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8 16:34

수정 2020.04.08 16:34

5년전 메르스때도 호들갑
복지에서 분리 말만 무성
식약처 등 대통합이 정답
[노주석 칼럼] 보건부를 신설하자
4·15 총선이 일주일 앞이다. 정치권은 여야 없이 감염병 체계와 공중보건 대응능력 강화를 외친다. 보건복지부에 보건의료 분야를 전담하는 복수 차관을 신설하고,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자는 공약도 그중 하나다.

5년 전 데자뷔다. 흘러간 신문을 뒤적여 보니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직후와 묘하게 겹친다. 당시 국회는 보건복지부를 복지부와 보건의료부로 분리하는 방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보건·의료·방역 기능을 담당하는 보건의료부를 신설하고,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결과는?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선에서 꼬리를 잘랐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이은 메르스의 교훈은 장롱에 넣었다. 변죽만 울렸을 뿐 바뀐 건 없다. 제2, 제3의 메르스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호소는 귓전으로 흘려보냈다. 5년이 지난 지금 보건의료부 신설마저 슬그머니 공약 목록에서 뺐다. 제2, 제3의 코로나가 걱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복지는 있지만 보건은 없다. 왜 그럴까.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장차관과 실·국장 간부 중에 보건의료 전문가는 덤불 속 바늘 찾기다. 1994년 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 개편된 이래 부처를 맡은 장차관 42명 중 보건 유관 인사는 5~6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장차관은 복지 업무만 챙긴다. 고시 출신 관료들은 승진과 인사에서 유리한 복지분야를 선호한다. 보건은 등기부상 호주일 뿐 서자 취급,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연금 전문가 문형표 장관과 관료 출신 장옥주 차관이 수뇌부였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박능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 몸담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신이고, 김강립 차관은 관료 출신이다. 박 장관은 거듭된 구설수로 신뢰를 잃었다. 의대를 나와 보건학 석사와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가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전문적 대응으로 '방역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무늬만 방역 총괄책임자인 정 본부장이 국무총리와 장차관 층층시하에서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본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질병관리본부가 독립적 전문성을 발휘하긴 어렵다. 우리의 방역 컨트롤타워는 옥상옥에 중구난방이다. 제3차 세계대전급 감염병 전쟁을 치르는 방역당국의 현주소는 어설프다 못해 안타깝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처럼 보건과 복지가 한 부처에 묶인 나라는 7개국에 불과하다. 보건과 복지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동거하는 시대는 흘러간 옛 노래다. 창궐하는 전염병을 독립적으로 지휘할 독립 중앙부처 신설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가 내놓은 복수 차관제와 질병관리청 승격으론 어림없다. 메르스 당시 인사혁신처장이던 이근면씨는 최근 한 칼럼에서 "보건의료 전문가가 이끄는, 기능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위기 시 총괄할 독립된 장관급 부처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우리가 코로나19를 물리친다고 해도 장기적인 바이러스 변종과 토착화에 대비해야 한다. 제2, 제3의 코로나 전쟁에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현재의 정부 직제론 이탈리아 꼴 나기 십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포함하는 대통합이 해답이다.
보건·의료·식품·의약품을 아우르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중앙부처가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별도의 인력 증원 없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바이오산업의 중흥을 꾀할 수도 있다.
보건부의 신설을 촉구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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