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실패해도 괜찮다" 삼성 인큐베이터, 40개 스타트업을 낳다 [사내벤처 키우는 대기업]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8 19:08

수정 2020.04.0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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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전자&C랩
임직원 아이디어 구현하는 場
실패 책임 묻지 않고 포기않도록 도와
147명이 스타트업 40곳 창업
C랩 아웃사이드선 외부 스타트업 육성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삼성 서울R&D캠퍼스에서 열린 'C랩 아웃사이드 데모데이'에서 1년간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삼성 서울R&D캠퍼스에서 열린 'C랩 아웃사이드 데모데이'에서 1년간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당시 이해진 연구원의 사업 기획안은 획기적이었지만 대기업이 직접 추진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게 사내벤처였는데 그게 '신의 한수'였던 거 같다." 삼성SDS 고위 임원은 1990년대 후반 삼성SDS 사내벤처로 출범한 네이버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삼성SDS 연구소에 근무하던 입사 5년차의 이해진 연구원이 기획한 인터넷 서비스 사업계획서는 회사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전산망 구축과 보수·관리를 주축으로 하는 삼성SDS로서는 객기 어린 직원의 야심찬 제안에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웠던 것. 설사 신사업으로 키우더라도 의사결정이 복잡하고 경직된 대기업 구조상 사업화까지는 먼 이야기였다. 대신 이 연구원에게 사내벤처를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곧바로 이 연구원은 권혁일, 김보경, 구창진, 오승환, 최재영, 강석호 등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1997년 2월 삼성SDS 사내벤처 1호인 '웹글라이더팀'을 만들었다. 이듬해 웹글라이더는 네이버컴으로 분사해 독립했고, 한게임과 합병해 승승장구했다. 지금은 시가총액 30조원의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인 네이버의 성장사다.

도전 정신과 실패 용인하는 문화 계기네이버를 탄생시킨 삼성의 벤처육성 DNA는 삼성전자가 명맥을 잇고 있다. 바로 국내 대기업의 대표 사내벤처프로그램인 삼성전자 C랩(Creative Lab)이다.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적 조직문화 확산을 위해 2012년 말 도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랩은 창의적인 끼와 열정이 있는 임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7년간 C랩을 통해 280개 과제가 진행됐고, 1143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C랩에서는 임직원들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회공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년 1000개 이상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는 39개 과제가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280개 과제 중 100개는 사내에서 활용됐고, 40개는 스타트업 분사로 이어졌다. C랩의 큰 장점 중에는 실패를 용인하는 것이다. C랩 스타트업으로 분사된 경우 5년 내 희망시 재입사가 가능하다. C랩 관계자는 "임직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로 마음껏 창업할 수 있는 동기를 독려하기 위해 재입사 기한을 충분히 부여했다"고 말했다. C랩은 창의적인 사업 발굴뿐 아니라 조직문화에도 새 바람을 일으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랩은 임직원들이 스타트업 스타일의 연구 문화를 경험해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현업에서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과감히 도전하는 창의적인 조직문화 확산에 기여했다"고 전했다.

C랩 과제에 참여하는 임직원들은 1년간 현업에서 벗어나 수원 삼성 디지털 시티와 서울대 연구공원 내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 마련된 독립된 근무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다. 또 팀 구성, 예산 활용, 일정 관리 등 과제 운영 전반을 팀 자율에 맡기고 있다. 회사내에서 쓰던 직급이나 호칭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랩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며 "이는 임직원들이 높은 목표에 더욱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삼성전자의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큰 물로 나가라…스타트업 창업 마중물삼성전자는 C랩이 국내 스타트업 창업의 촉진제가 되길 바라고 있다. 2015년 8월부터 C랩의 스타트업 독립을 지원하는 이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 임직원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재들을 발굴해 삼성전자의 우수한 기술과 인적자원을 외부로 이관, 국내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현재까지 C랩에서 147명의 임직원이 스타트업에 도전해 40개 기업을 창업했다. 이들 분사 기업을 통해 200여명의 신규 고용도 창출했다. C랩 출신 스핀오프 기업들의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이동식 전기차 충전기 개발업체인 '에바(EVAR)'는 지난해 11월 법인을 설립하고 8개월만에 네이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슈미트로부터 12억의 투자를 유치했다. 전기차 충전서비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제주도에서는 에바가 사업자로 선정돼 올해부터 2년간 실증사업을 진행한다. '에임트(AIMT)'라는 분사기업은 유통 대기업에 친환경 신선식품 패키지 '에코쿨박스'를 공급하는 등 지난해만 약 50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연평균 30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건강관리 서비스 '유어케어(urCare)'를 제공하는 '이투이헬스(E2E Health)'는 최근 미국 1차 의료기관들과 서비스 계약을 성사시켜 미국 의료시장에 진출했다. 360도 웨어러블 카메라를 개발하는 '링크플로우(LINKFLOW)'는 2018년 미국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의 860%를 달성하는 등 223억원의 누적 투자액을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

외부 스타트업도 키운다삼성전자는 2018년 8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C랩을 외부 스타트업까지 확대했다. 국내 유망 스타트업들이 대상인 'C랩 아웃사이드'을 도입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5년간 C랩 아웃사이드를 통해 외부 스타트업 300개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다. 사내 벤처인 C랩 인사이드 200개까지 포함해 2013년까지 총 500개의 사내외 스타트업을 키우겠다는 야심찬 목표다. C랩 아웃사이드는 기술 지원부터 투자 유치까지 스타트업의 안정화 단계까지 전반을 지원한다. C랩 아웃사이드 선발 스타트업들은 삼성 서울R&D캠퍼스에 마련된 전용 공간에 1년간 무상 입주하고, 임직원 식당, 출퇴근 셔틀버스도 자유롭게 이용한다. 또 팀당 1년간 최대 1억원의 사업 지원금을 받고,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또 삼성전자와의 사업 협력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부터는 2019년 'C랩 아웃사이드 공모전'을 통해 18개 스타트업을 지원중이다.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 겸 삼성리서치 연구소장은 "스타트업의 강점을 잘 살린다면 소비자에게 보일 새로운 솔루션을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새로운 경험을 찾는 여정에서 삼성전자가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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