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돈 주고 욕먹는 ‘법’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09 16:38

수정 2020.04.09 16:38

[기자수첩] 돈 주고 욕먹는 ‘법’
좋은 일을 하면서 욕먹을 때가 있다. 받는 사람 불안하게 오락가락할 때다.

친구에게 돈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친구는 기뻐한다. 그런데 나는 친구에게 기준을 운운하며 얼마 줄지 고심한다. 한 번쯤은 참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를 반복한다. 친구는 금세 기분이 상한다.
안 받는 것보다는 좋을 테다. 하지만 친구의 기분은 안 받느니만 못해진다. 없어 보인다, 친구의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저렇게라도 해서 욕먹고 싶은가. 매일 바뀌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기준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3번 바뀌었다. 당초 정부는 전체 가구의 50%에 100만원(4인가구 기준) 지급을 검토했다. 그러나 여당은 확대를 요구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소득 하위 70% 가구에 지급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그러자 건강보험료 기준안에 대해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여당 대표는 100% 지급안을 발표했다. 세금낭비라는 논란이 일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고소득자의 세금 환수로 보편지급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일부 반대 의견은 있지만 타당한 정책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소비는 위축됐다. 정부 재원으로 소비를 진작하자는 의견은 많은 동의를 얻고 있다. 실업으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금은 단비 같은 존재다. 지원금은 우리만의 별난 정책도 아니다. 미국은 약 85% 국민에게 1인당 1200달러를 지원하고, 그 이상 소득도 일부 지원금을 제공한다. 독일은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에게 5000유로를 지급한다.

기준만 바뀌는 사이에 정책 본연의 '좋은 의미'는 사라지고 있다. 총선을 앞둔 여당 대표의 발언 탓에 지원금이 '표퓰리즘'으로 전락했다. 정책은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총리는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까'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사이 미국과 독일은 정책 발표 2주 내로 지급을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얼마를 줄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행정부에서 해야 할 과제다. 시민사회에 떠넘겨 놓고 합의점을 모색할 종류가 아니다.
이미 부처 실무진에서 최적의 방안이 나왔어야 했다.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하면 될 뿐이다.
"2주 안에 사람들의 계좌에 지원금이 입금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울림 있는 이유다. 왜 받는 사람 불안하게 하는가. 왜 '없어 보이게' 하는가.

beruf@fnnews.com 이진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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