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총선 이후에 눈감은 선거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3 17:09

수정 2020.04.13 17:09

'샤워실 바보'공약 난무하고
나라 살릴 장기비전 안 보여
유권자 분별력이 최후 보루
[구본영 칼럼] 총선 이후에 눈감은 선거
코로나19 사태 탓일까. 4·15 총선 표밭도 썰렁해 보였다. 그런데 며칠 전 퇴근길 풍경은 달랐다. 필자가 사는 동네 어귀 어느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든 피켓을 보고 놀랐다. 앞면엔 여당 후보의 사진이, 뒷면에는 '종부세 철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정부·여당의 기존 입장과 180도 달라진 공약을 보고 선거의 위력을 실감했다.

현 정부 들어 19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안 잡히던 집값이었다.
중과세와 대출 봉쇄, 재건축 규제 등 수요 억제만을 겨냥하면서다. 공급도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엔 귀를 닫은 결과다. '수도권에 다주택을 보유한 고위공직자는 1채 처분하라'는 청와대의 독려가 안 먹힐 정도로 반시장적 정책의 한계가 드러났는데도 그랬다. 지난달 공직자윤리위가 공개한 자료를 보라. 청와대 비서관 이상과 장차관 87명 가운데 27명은 여전히 다주택 보유자였다.

서울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 전 총리도 최근 '1가구 1주택' 실소유자에 대한 종부세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3구와 양천, 용산 그리고 경기 성남 분당 등의 여당 후보들은 아예 종부세 면제 공약을 내걸고 있다. 1가구1주택 장기 실거주자가 대상이다. 다만 고공비행하던 집값도 '코로나 공습'으로 마침내 주저앉을 참이다. 이제서야 흔드는 종부세 감면 카드가 "표가 무섭긴 하군!"이라는 느낌부터 준다.

표의 위력은 여야 간 재난지원금 불리기 경쟁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소득 하위 50%에 4인가구 기준 100만원을 주자는 기획재정부를 윽박지르다시피 해 키운 게 당정청의 '소득 하위 70%에 지급안'이었다. 하지만 형평성 논란이 일자 틈을 비집고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전 국민 지급안'을 내놨다. 그러자 상위 30% '표심' 이반이 걱정됐던 여당도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쳤다. 표는 보이나 재정건전성이나 미래세대의 부담은 안중에 없어서일까. 여야 모두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바꾼 꼴이다.

'샤워실 바보'라는 말이 있다. 정책가의 조변석개 식 경기대응에 빗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의 수사다.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리다 참을성 없이 다시 찬물 쪽으로 바꾸는 식의 요령부득의 행태가 경제를 망친다는 뜻이다. 선거전에서 민의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판엔 샤워실 바보들이 만든 것 같은 근시안적 공약만 보여서 문제다. 이로 인해 후보들이 총선 이후 밀려올 위기에 눈감는다면?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이 된다.

대개 정권의 임기 중반 총선은 국정 중간평가 성격을 띤다. 이번에도 문재인정부의 지난 3년이 만족스럽다면 여당에, 형편이 더 나빠졌다고 본다면 야당에 투표하면 될 것이다. 다만 지금은 모든 이슈가 '코로나 블랙홀'로 빨려든 상황이다. 더욱이 코로나 경제 충격파의 크기와 길이를 현재로선 가늠조차 힘들다. 성장지체와 사회적 양극화, 청년취업난 등에서 보듯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기저질환'을 앓던 한국 경제다. 어쩌면 총선 후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권자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겁다.
장 자크 루소가 그랬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인이고, 끝나면 노예"라고. 유권자들이 그저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는 선심에 취해선 곤란하다.
언젠가 끝날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동체의 미래까지 내다보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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