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영화는 피터 호윗 감독의 2001년작 '패스워드'이다. 거대 디지털기업 회장으로 분한 명배우 팀 로빈스의 말투나 행동거지, 강한 독점욕과 야욕은 빌 게이츠를 떠올리게 한다. 정보공유를 부르짖는 순수한 컴퓨터 천재를 짓밟는 장면은 MS와 리눅스의 대결을 연상시킨다. 인터넷 검색업체 넷스케이프를 협박과 회유로 집어삼킨 MS의 과거도 영화 속에 녹아있다. 1990년대 MS가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 휘말렸을 때 법정에서 드러난 적나라한 반도덕적 행태가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원제는 '반독점(Anti Trust)'이었다.
빌 게이츠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다. 라이벌이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함께 가장 미국적 기업인이다.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나 전 세계에 끼친 영향력은 이미 카네기나 록펠러 반열이다. 그는 2017년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예언했다.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변화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면서 "아마도 10억명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퇴 후 '방역 전도사'로 변신했다. 코로나19 방역모범국 한국의 열성팬이기도 하다. 백신 개발과 저렴한 백신 공급에 전념 중이다. 그러나 두 편의 영화에서 알 수 있듯 빌 게이츠에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배후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그림자세력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일원이라는 음모론에 싸여 있다. '욕망의 화신' 스티브 잡스가 요절한 것과 달리 빌 게이츠는 '돈의 화신'이란 이미지를 벗었다. 자선으로 제2의 삶을 사는 그의 변신은 무죄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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