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슬기로운 격리생활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5 20:19

수정 2020.04.15 20:19

[특별기고]슬기로운 격리생활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겨서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주 전 로스앤젤레스(LA)에 왔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 스튜어디스가 안내장을 승객들에게 배포했는데, 안내장에는 '코로나는 사람이 사람에게 전파하는 바이러스이므로 사람 간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섬뜩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평소 너무 무섭게 대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던 공항 관리들도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도장을 찍어줬다. 오히려 내가 말을 걸까봐 피하는 표정이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LA 외곽 소도시인 칼라바사스시에는 서울보다 더 갈 곳이 없다. 3월 19일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빼고는 집에 머물라는 행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모든 직장은 재택근무이며, 식당은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식료품을 사는 데 이용할 수밖에 없는 마켓 계산대에는 6feet(1.8m) 거리마다 마크를 해두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지켜야 하는 에티켓은 바로 사람 피하기. 그러지 않으면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니 이 정도 되면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된 셈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 단톡방에서 다음 모임을 어찌 할지 논의했다. 다들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미루자고 자연스레 결론을 내렸다. 어떤 것이 슬기로운 격리생활일까. 유익하게 지내면서, 무료하지도 않게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단순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본인의 책임으로만 맡겨둘 수 없다. 온 사회가 함께 도와야 한다. 지금 미국에선 학생들이 대부분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인터넷이 없으면 수업 참여가 불가능하기에 여러 통신사들이 무료 인터넷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대형 통신사에서 인터넷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특정 기간 (칼라바사스 지역은 두 달) 인터넷 기계 설치, 배송비, 라우터를 지원하거나 휴대폰 모바일 데이터를 추가해주는 방법으로 혜택을 주고 있다. 이 점은 우리나라도 참고할 만하다. 코코세라 같은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개방형 대학 강좌) 플랫폼에서는 컴퓨터 코딩부터 비즈니스 영어 등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지난주 마감한 코딩수업에는 전 세계에서 8만명의 지원자가 한 번에 몰렸다고 한다. 파리의 유서 깊은 오페라 가르니에도 현재 임시휴무 상태이나, 백조의호수 발레 공연이나 클래식 콘서트 등을 특정 기간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넷플릭스, 훌루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혹은 HBO 같은 TV 채널에서도 무료영화를 제공하고 있다.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 마켓들도 노인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쇼핑시간을 두고 있다.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지원하고 협조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점이 다행스럽다.

주변을 돌아보니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자세들이 많이 다르다. 너무 과도하게 걱정하는 사람, 너무 과도하게 무심한 사람. 극과 극의 유형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같이 내일이 불투명한 시대일수록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 조기 극복을 위한 첫 관문이다.
힘들지만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통해 우리 세대가 처음 겪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서로 돕는, 현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회장,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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