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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바이러스 시나리오플래닝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6 17:49

수정 2020.04.16 17:49

[여의도에서]바이러스 시나리오플래닝
만개한 봄꽃의 자태가 절정에 이른 요즘 벚꽃의 꽃말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순결, 절세미인 등 본래의 의미를 제쳐두고 '사회적 거리두기'란다. 벚꽃의 유혹에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휴일에 외출을 자제하자는 의미였다.

예년 같으면 상춘객들과 뒤섞여 봄꽃의 향연을 만끽하고도 남았을 시기에 씁쓸한 농담을 던지는 그 역시 작금의 상황이 적응 안되긴 마찬가지였나보다. 코로나19가 엄습한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생경한 일들로 채워지고 있다. 고강도 거리두기를 비롯해 제로금리, 온라인 개학, 올림픽 연기, 자가격리 등 전대미문의 사태들을 목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 경기는 칠흑 같은 침체의 터널로 들어서는 등 마치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치료제가 없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우리 삶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닥쳐와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그나마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이 정점을 찍고 진정국면에 들어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섣부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시급한 현안을 따져봐야 한다. 물론 경제, 사회적인 여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가 최대 당면과제다. 다만 향후 어떤 방식으로 바이러스 리스크에 대처할지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역시 더 이상 소홀히 할 수 없다. 감염병 하나에 글로벌 경기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를 보고 있지 않는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바이러스 시나리오 플래닝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에 발생 가능한 다양한 변수로 전개될 여러 시나리오를 도출해 상황별로 선제적 대응전략을 짜는 것을 말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군이 최적의 폭격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유래됐다. 현재는 기업의 전략 수립뿐 아니라 위험관리, 혁신역량 개발 등 경영기법에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대기업에 본격 도입돼 변수에 전염병도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 등으로 수치와 단기 평가에 몰입돼 전염병은 주요 변수로 취급되지 않는다. 분석도 형식에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그동안 신종플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에도 대부분 공장이 가동되다 보니 기업들에 전염병 리스크는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에서 도미노 셧다운(일시 폐쇄)이 이어지고,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등 전염병이 경영환경의 최대 리스크라는 것을 체득하고 있다. 기업활동 전반이 올스톱될 수 있는 만큼 현재보다 정교하고 민감하게 상황을 체크할 수 있는 시나리오 플래닝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대응의 모범국으로 극찬받고 있지만, 정부 또한 바이러스 리스크에 기반한 미래 불확실성을 전제로 상황별 대응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 종교시설, 콜센터, 유흥업소 등 방역체계에 허점을 드러냈다. 집단감염 위험시설의 대상과 범위부터 명확히 해야 제2, 제3의 코로나19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 4년 전 예산 전액삭감으로 무위로 돌아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뿐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과 공동방역을 포함한 보건의료 협력체제 구축 등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만큼 21대 국회와 정부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국가와 기업의 궁극적인 경쟁력은 미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능력에 달렸다.
앞날에 대한 치밀한 준비태세를 갖출 때 예고된 위기가 오지 않는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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