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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달째 기숙학원에만, 무너진 전화기 신화"…'춘래불사춘'인 靑春

뉴스1

입력 2020.04.17 05:40

수정 2020.04.17 10:42

지난 9일 한 고3 수험생이 서울 강서구의 집에서 원격수업을 듣고 있다. 2020.4.9/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지난 9일 한 고3 수험생이 서울 강서구의 집에서 원격수업을 듣고 있다. 2020.4.9/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윌비스 신광은 경찰학원에서 현장 강의를 대체할 동영상 강의 녹화가 이뤄지고 있다. 2020.3.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윌비스 신광은 경찰학원에서 현장 강의를 대체할 동영상 강의 녹화가 이뤄지고 있다. 2020.3.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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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조현기 기자,김정근 기자,박혜연 기자,최동현 기자 = #1. 3번째 수능을 준비 중인 A씨(21세·남)는 석달째 기숙학원에서 한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부모님께 답답함을 호소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밖에 나가도 공부가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아 마음을 다시 다잡고 공부에 열중하기로 결심했다.

#2. 2년 동안 5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B씨(31세·남)은 최근 인사혁신처로부터 시험이 연기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고시 준비생들과 함께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서 눈물까지 펑펑 흘리면서 인생을 한탄하는 친구도 있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3. 수도권의 한 사립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C씨(26세·남)는 최근 삼성전자에 다니는 선배들을 만나면서 부러움과 좌절에 휩싸였다. C씨는 "전·화·기(전자·화학·기계공학 등 취업 잘되는 3대과를 지칭하는 단어) 신화는 옛말"이라며 "지난 하반기에는 줄줄이 서탈(서류탈락)이었고 올 상반기는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과 동기들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며 걱정했다.

대학입시와 공무원시험, 취업시험 등을 준비 중인 수험생들의 마음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한 마디로 수험생의 마음은 봄이 왔지만, 아직 마음은 차가운 겨울처럼 얼어붙은 상황이다.

물론 누구나 한 번쯤은 수험생 시절을 겪어본 것처럼,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시험 연기, 온라인 개학 등으로 인해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어깨가 더 무겁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입시 일정 변경은 물론 출제 방향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최근 온라인 개학을 맞이한 고3 수험생 A씨(18세·여)는 수시로 방향을 잡고 있는데 코로나19로 대외 활동이 줄줄히 취소되면서 준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는 지난 14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수시를 준비하기 위해선 경시대회 출전을 비롯한 대외활동으로 학생부 관리를 해야 한다"며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줄줄이 취소돼 학생부 관리가 걱정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정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인강을 중심으로 수능 준비에 올인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다시 정시로 방향을 틀기도 애매해 걱정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불안에 대해 입시교육 전문가인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수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이 없어서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며 "수시의 중심인 학생부는 사실상 1~2학년 활동이 (평가의) 중심을 이룬다. 3학년 활동이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불안감을 느끼는 수험생을 다독였다.

재수생과 N수생의 경우에도 코로나19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기숙학원에 자녀를 보낸 D씨는 "외박·외출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하면 좀 숨통이 트일텐데 전화로 답답함을 호소해 안쓰럽다"며 "기숙학원에 갇혀있는 아이들이 예민한 것 같다. 아이들끼리 싸웠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온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재수학원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들에게 외출·외박을 통해 집을 방문하게끔 하고 있다.

기숙학원을 운영하는 교육업체들은 수험생들의 예민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에스티유니타스는 남양주 스카이에듀 기숙학원생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 매주 전문 강사를 초빙해 'SNPE 바른자세 운동 프로그램'과 '성공심리학' 강의를 운영 중이다.

또 남양주 스카이에듀 기숙학원은 원내 체육대회 및 영화관람, 뷔페 등의 특별 이벤트를 열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기숙학원은 수험생들이 보고 싶어하는 유대종 국어 강사를 기숙학원으로 초청해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

메가스터디교육도 기숙학생들을 위해 '삼겹살 데이', '멕시칸 데이'(남미 음식 먹는 날) 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또 떨어진 체력 보강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전문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고, 학생들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멘탈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투스교육 역시 주기적으로 수업 없고 함께 모여 영화와 운동을 하거나 치키 파티를 하는 '노 터치 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기숙학원들이 사회와 격리된 생활 속에서 답답한 수험생들을 위해 일종의 해방구 같은 시간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공무원·공기업 시험 준비생과 취업준비생들의 경우에도 입시 수험생만큼 큰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콜은 성인 3903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심리상태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절반 이상(54.7%)이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코로나 블루'(Blue)는 코로나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면서 느끼는 우울감이나 무기력증 등 심리적 이상 증세를 일컫는 말이다.

특히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취업을 앞둔 대학생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채용중단, 연기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함'(21.7%)을 우울함과 불안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2년 동안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F씨(31세·남)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공무원 시험이 연기되면서 공부하기 뒤숭숭하다. 다른 공시생 역시 그럴 것 같다"며 "오히려 시간이 더 생겼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다시 시험 공부에 매진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사기업을 퇴사하고 1년 정도 공기업을 준비 중인 G씨(31세·남)은 "시험이 계속 연기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공기업은 학력과 나이를 안 본다며 블라인드 채용을 강조하지만 솔직히 나이가 나이인 만큼 주위의 시선과 압박이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하반기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 H씨(27세·남)는 토익이 계속 연기되면서 초초함을 느끼고 있다. G씨뿐만 아니라 취업준비를 갓 시작한 취준생들은 토익이나 오픽 등이 끝나야 면접 등 고차 전형을 준비할 수 있는데 기본 스펙(서류 전형)이 해결되지 않아 마음이 조급한 상황이다.

G씨는 "토익은 '고고익선'(高高益善)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점수를 높게 받으면 좋다고 해서 겨울방학 내내 준비를 했다"며 "그렇다고 계속 토익만 붙잡고만 있을 수 없어 난처하다. 주위 친구들도 한목소리로 기업들이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올해만 영어 공인 성적에 대해 좀 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토익(TOEIC)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월29일 이후 총 4 차례 시험이 취소됐다. 이에 따라 토익 주관사인 YBM 한국TOEIC위원회는 오는 6월7일 토익 정기시험을 추가 시행한다고 밝혔다.

심리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불안 자체를 거부보다는 인지하고, 혼자서 해결하기 보다는 믿을 만한 상대와 함께 불안을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불안을 없애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불안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불안을 거부하고 억제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불안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불안한 감정이 느껴질 때 혼자 있으면 더 불안하다. (본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불안한 감정이 줄어든다"며 "믿을만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글로써 현재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보면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역시 "현재 대한민국 모든 고3·공시생·취준생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나만 불안하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이어 "현재 내가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긍정적으로 해소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믿을만하고 내게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친구나 부모님을 찾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