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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지수와 투자의 법칙… 코로나에 베팅하시겠습니까 [글로벌 리포트]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9 17:22

수정 2020.04.19 17:22

공포지수, 역사적 패턴이 있다..1990년대 만들어진 공포지수 'VIX'
IT버블 붕괴·글로벌 금융위기 등 역사적 사건때마다 급등→안정 반복
이번 코로나 사태로 3월 정점 찍었다가최근엔 감염 확산에도 수치 절반 꺾여
공포에 베팅? 불확실성 제거가 관건 투자 여부 놓고는 전문가 의견 엇갈려
"공포지수 정점은 증시 반등의 신호".. 버핏·손정의 "저가 매수 기회" 분석
증시·공포지수 함께 오르기도 해 "불확실성 제거가 먼저" 신중 목소리도
공포지수와 투자의 법칙… 코로나에 베팅하시겠습니까 [글로벌 리포트]

코로나19 공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압도당하고 있다. 확진자 증가세는 전 세계 각국으로 활개를 치는 반면 뾰족한 예방약도 치료제도 없다. 패닉이 가져올 충격의 크기에 이어 도대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빠진다. 이에 1990년대 들어 불확실성을 예측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동성지수(VIX)'가 등장했다. VIX는 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상장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옵션이 앞으로 30일간 어떻게 변할지 변동성 여부를 수치화한 지표다. 소위 공포지수라 불리는 VIX는 주식시장이 급락하거나 불안할수록 수치가 올라간다.
VIX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 3월 16일 82.69로 도입 이래 역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특이한 점은 코로나19 공포가 여전히 심화되고 있는데도 최근 VIX가 최고치의 절반인 40대로 꺾였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초기의 과도한 자신감에 이어 과도한 불안심리가 혼재되면서 VIX도 요동을 치고 있는 셈이다. 투자업계 일각에선 '공포의 정점'을 오히려 '기회의 시작'으로 보려는 시각도 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역사적 대사건 때도 VIX가 고점을 찍은 뒤 심리적 불안감 해소로 실물 경제의 안정화에 앞서 급락하는 패턴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VIX는 1990년대 처음 도입된 이후 급등락을 반복했다.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수치로 나타낸 만큼 완벽한 선행지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장의 불안을 들여다보는 지표로 사용됐다. 가령 VIX는 20∼30 정도 범위가 평균 수준으로 이해된다.40이 넘어갈수록 불안심리가 높아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려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급등하다가 이내 심리적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이내 급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전 세계로 퍼지던 지난 3월 16일 VIX는 82.69를 찍으며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는 전날보다 무려 43%나 급등한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월 20일 최고치(80.86)를 넘어선 기록이다. 코로나19 세계 대유행 전인 올해 2월 중순까지는 불과 13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VIX는 고점을 찍은 뒤 점점 하락해 4월엔 40대를 기록 중이다. 80대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 것 같지만 공포가 수그러들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15일 마켓워치는 "VIX 40 근처는 여전히 매우 변동적인 시장을 나타낸다"면서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VIX가 하락한 건 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 중순 10%씩 폭락하던 증시가 최근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급등락 패턴은 예전 역사적 대사건에서도 반복됐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미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당시 부채 규모는 6130억달러. 세계 17위 경제 국가인 터키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금액이자,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다. 그런데 리먼이 파산하기 전 VIX는 17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리먼 붕괴 이후 VIX는 2008년 11월 20일 80.86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이전 최고치다. 정점을 찍었던 6개월 후인 2009년 5월에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졌다. 이밖에 VIX가 눈에 띄게 급등했던 시기는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및 아시아 외환위기(45.74), 2002년 IT 버블 붕괴(45.1), 2011년 유럽 재정위기(48.8) 정도를 들 수 있다.

급등락 국면 사이엔 긴 안정기도 있었다. 1992~1996년 사이 5년간 VIX는 25를 넘지 않았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영향으로 38.20까지 오르긴 했지만 VIX 평균은 22.38에 그쳤다.

그러다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VIX는 45.74까지 치솟았다. 러시아 모라토리움으로 뉴욕 월가가 크게 출렁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당시 최대 헤지펀드로 연평균 40%가 넘는 수익률을 자랑하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러시아 국채 투자로 위기에 몰렸다. 1조달러가 넘는 러시아 국채 관련 파생상품을 보유 중이던 LTCM은 국채가격 폭락으로 하루에 5억5500만달러(약 5600억원)를 날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 시장은 위기를 맞았고, 사태는 14개 금융회사들이 LTCM에 36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진정됐다. 이후에도 2003년까지 VIX는 25~30대에 머물렀다.

2004~2007년 사이도 저점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엔 VIX 최고치가 31.09였다. 평균값은 17.54다.

2008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011년 유럽발 금융위기까지 진화된 2013~2017년 사이엔 또다시 조용한 흐름이 이어졌다. 2017년엔 VIX가 9.14라는 역대 최저값도 나왔다.

과거 금융시장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과 바이러스로 불거진 이번 코로나19 국면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 다른 전염병 때는 어땠을까. 2015년 9월 메르스가 퍼지기 시작했지만 VIX가 15대를 유지했다. 그해 말에는 13대로 떨어졌다. 2009년 4월 신종플루 때는 4월초 39를 찍었지만 이후 지속적인 내림세를 보였다. 2003년 2월 사스 유행 때도 최고치 34에서 한 달만에 30대 아래로 뚝 떨어졌다. 5월부턴 20대 초반을 기록했다. 시장이 비교적 안정돼 코로나19 국면과 대조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질병 확산의 규모가 국지적이었고 세계 수요공급 연결 구조가 지금보다 느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가져올 충격에 대해 심리적 불안에서 벗어나 합리적 판단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시장 일각에서는 공포심리가 극에 달할 때 "위기는 기회"라는 선매수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VIX가 통상 주식시장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VIX가 높아지면 주식시장의 변동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투자에 대한 불안심리가 높아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려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이후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VIX가 최고점에 이르면 공포심리가 극에 달해 매도세가 소진(주식을 팔 사람이 모두 판 상태)되면 주가가 바닥을 형성했다는 의미로 증시 반등의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올해 1분기 뉴욕증시는 10여년만에 최악의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 다우존스 지수는 24% 넘게 떨어지며 19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33년 만에 최악의 폭락세를 보였다. 이에 증시와 반대로 움직이는 VIX는 1분기에만 289% 폭등, 1990년 지수 집계 이후 사상최대 분기 상승폭을 기록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대표적인 증시 바닥론자이다. 버핏 회장은 미국 증시가 폭락하자 지난 2월 24일 미 CNBC 인터뷰에서 "주가 급락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며 "사람들은 싼 값에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핏 회장은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을 가져라"는 격언으로 유명하다.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 비전펀드를 운용하는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도 증시 폭락세가 한창이던 3월 2일 "지금이 우량주를 저가에 매수할 기회"라고 평가했다. 뉴욕증시가 또다시 10% 넘게 폭락해 패닉에 빠지게 한 지난 3월 16일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라이더 최고채권투자책임자(CIO)가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의 자산들을 한꺼번에 저가로 매수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한 번 뿐인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도한 심리적 불안감과 마찬가지로 무리한 고위험 고투자도 경계대상이다.

실제로 VIX 흐름으로 향후 상승·하락을 완전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드물긴 하지만 주가와 VIX가 동반 상승하는 현상도 때때로 나오기 때문이다.

2017년 2월 11일 뉴욕증시 3대지수(나스닥·S&P500·다우)는 5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 동반 경신행진을 펼쳤다. 3대 지수가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동시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지난 1992년 1월 2일 이후 25년여 만이었다. 이런 장밋빛 분위기 속에선 변동성지수가 하락하는게 일반적이지만, VIX는 11% 이상 급등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VIX와 주가가 같이 오르는 현상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시장의 '랠리 경계감'을 지목했다. 주가가 오를 때마다 조만간 크게 하락할 수도 있다는 투자자들의 우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이슈가 결국 방역의 문제로 거론되는 점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시장의 기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따른 세계 경기 회복 시기에 대해 V자 반등 외에 'U'자 반등 혹은 장기침체를 의미하는 'L' 흐름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 전 의장이 V자 반등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그의 후임 재닛 옐런 전 의장도 피해가 커질수록 U자 반등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며 심지어 L자형 침체 가능성도 언급했다.


VIX를 만든 '공포지수의 아버지' 로버트 웨일리 교수는 지난달 CNBC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정점에 달할 때까지 시장 변동성이 이어질 것"이라며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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