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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20 17:22

수정 2020.04.20 17:22

[fn논단]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윈스턴 처칠은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Never waste a good crisis)"고 했다. 그렇다. 위기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위기는 항상 위험과 더불어 기회를 동반한다고 하듯이 위기 때문에 더 좋아질 수도 있다.

당면한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번 위기로 인해 전 세계 각국은 보건·의료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다.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투자도 급증할 것이다.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리스크 관리도 한 단계 더 향상될 것이다. 공동대응을 위한 국가 간의 글로벌 협력도 강화될 것이다. 비단 보건·의료만이 아니라 교육과 유통 부문에서도 온라인 강의와 판매 등이 급속하게 늘면서 경제와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재택근무나 비대면 접촉의 확산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전 세계가 코로나19 이전(BC)과 이후(AC)로 나뉠 것이라는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조만간 종식되더라도 경제위기는 그보다 더 장기화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제위기 대응책이 중장기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우려되는 면이 많다. 신속한 금리인하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자산버블을 더 부추기고, 금융위기 이후에 급증한 기업과 가계의 부채에 더 추가적인 부채를 쌓게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재정을 총동원해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했다.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것도 소비나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 결과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하면서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도 불가피하다.

매출 급감 등으로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한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가릴 것 없이 지원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 기업의 연쇄도산은 대량실업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기업지원은 리스크 관리를 무력화시키고,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좀비기업까지 대거 연명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계와 기업의 구조조정이 계속 지연되면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도 멈출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계와 기업이 중앙은행과 정부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든 것도 문제다. 지금 미국에서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하다'라는 농담도 떠돌고 있다. 앞으로 또 다른 경제위기가 닥치면 중앙은행이건 정부건 쓸 수 있는 카드가 바닥난 상황으로 보인다.

총선이 끝난 지금부터는 코로나19 사태가 야기한 경제위기를 잘 활용해서 경제의 복원력을 회복하고, 중장기적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다시 성장해온 경험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대응책이 '소득주도성장'과 비슷한 방향성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혁신성장'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획기적인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제, 주52시간제, 탈원전과 같은 정책도 그동안의 성과나 문제점을 재검토하고 방향성은 물론 속도조절에도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기존 정책을 고집하지 않는 것도 용인될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정책이야말로 중장기적으로 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이번에도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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