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단독] '포스트 아베' 日이시바 시게루 "한계 다다른 아베노믹스, 대기업 아닌 국민소득 늘려야"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20 18:12

수정 2020.04.21 13:06

'포스트 아베' 유력한
이시바 시게루를 만나다
일반 국민·중소기업
지방에는 낙수효과 없어
반일·반한 편가르기 아닌
양국 국민의 이해 필요
핵·미사일·납치 문제
정부 대 정부로 대화를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도쿄 나카타초 일본 중의원 회관에서 가진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한·일관계, 북·일관계, 일본의 정치와 경제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영수 기자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도쿄 나카타초 일본 중의원 회관에서 가진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한·일관계, 북·일관계, 일본의 정치와 경제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영수 기자
【 도쿄=조은효 특파원】 "아베노믹스? 대기업과 주주를 위해 주가 올린 것 아닌가."

일본의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전 간사장의 아베노믹스에 대한 촌평이다.

아베노믹스에 대해 "좋은 부분은 계속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소득이 얼마나 높아졌는가. 금융완화를 계속 한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지는가. 그런 건 아니지 않나." 반문이 이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코로나19 방역 대응에 사실상 실패하면서 자민당에선 6월 퇴진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실책과 비판여론이 커질수록 지난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맞붙었던 이시바 전 간사장의 등판설이 부상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맞수' 이시바에 대한 강한 견제로 그의 파벌은 축소될 대로 축소돼 있지만, 자민당이 코너에 몰리면 몰릴수록 국면전환 카드로 결국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감으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을 소방수로 투입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피어나고 있는 것. 이른바 '이시바 시게루 대망론'이다.

'포스트 아베' 대표주자가 품고 있는 생각이 궁금해졌다. 도쿄 나카타초 중의원회관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을 만나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한·일 관계, 북·일 관계, 일본 정치와 개헌 문제, 일본 경제에 대해 폭넓은 대화가 오갔다. 그의 사무실 서고엔 칸칸이 다케시타 노보루, 다나카 가쿠에이, 하시모토 류타로, 후쿠다 야스오, 고이즈미 준이치로 등 역대 일본 총리들의 사진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7년여에 걸친 아베노믹스의 평가는.

▲아베노믹스의 효과? 그건 주가 올린 것 아닌가. 주주와 대기업의 이익이 커진 것, 그게 아베노믹스 최고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소득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누가 정권을 잡는다 해도 앞으로는 국민의 소득을 늘려야 한다. 대기업, 주주, 경영자, 그리고 도쿄(수도권)의 이익이 일반 국민과 중소기업, 지방으로 이어질 것이란 (낙수효과)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정권을 잡게 된다면, 이시바 전 간사장이 구상하는 경제정책, 소위 '이시바노믹스'가 있다면.

▲지금까지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도쿄, 대기업, 남성을 중심으로 전개돼왔으나 이제 이런 식의 경제정책은 한계에 다다랐다. 잠재력이 있으나 이제껏 중심에 서지 못한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중소기업, 서비스업, 고령자, 여성, 지방, 농업·어업·임업 등 1차산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아베노믹스의 재정확대, 금융완화는 지속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좋은 부분은 계속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 금융완화를 계속한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나. 재정을 엄격히 한다는 건 중요한 문제이나 교육, 청년, 결혼과 육아 등 그간 배분하지 않았던 분야로 재정의 중심을 조금 옮겨가고 싶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재정확대 및 금융완화와 관련, '큰 폭의 궤도수정' 여부에 대해선 비교적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다만, 정책대상에 대한 일정폭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한·일간 관계 악화가 지속되고 있는데.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목소리를 높여 강조). 양국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불사하지 않아야 한다. 정상 간에 교류가 없는 건 굉장히 큰 손해다. 일본으로선 한국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높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감정을 정치로 이용하는 건 전혀 좋은 정치가 아니다. 아베 정권이 얼마나 계속 갈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한·일 관계가 나빠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관계 개선을 위해 공유해야 할 가치가 있다면.

▲과거 김대중 대통령,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양자 공히 균형감각이 뛰어난 정치가였고 (반일·반한의) 편가르기가 아닌, 어떻게 하면 양국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노력했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양국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에) '반일종족주의'라는 주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관계 개선에 나서려면 한국 쪽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일본 역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허나 정치가라면, 설득해 나가야 한다. 아무리 각자 주장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도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도쿄 중의원 회관에서 이뤄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북일관계, 일본 정치와 경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영수 기자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도쿄 중의원 회관에서 이뤄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북일관계, 일본 정치와 경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영수 기자

―과거 위안부 문제와 관련,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는 소신 발언을 펼친 바 있는데, 징용 문제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1965년 한·일 기본조약 협상 당시 일본에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싶다는 제안을 내놨지만 당시 박정희 정부가 '왜 일본 정부가 한국 국민에게 배상을 하느냐'라면서 거절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 내에서 그 부분을 다시 검토해봤으면 좋겠다. 실제 그로 인해 한국에서 (노무현정부 당시) 개인에게 돈을 지급한 바가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위안부 문제나 징용 문제에 대해 (과거사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에도 일본은 여전히 수출규제를 지속하고 있다.

▲징용 문제와 수출규제는 별개의 문제다. 일본 정부가 특별히 한국에 대해서만 차별적 정책을 취하고 있다곤 생각하진 않는다. (아베 정권에서) 징용과 수출규제가 관계가 있는 것처럼 발신한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북한으로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면, 일본으로선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이 유출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면 다시 화이트국으로 복귀할 것이다. 한국으로선 일본이 안심하도록 설명해야 하며 일본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측에 설명을 구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보다 한반도 통일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친북좌파정권이라는 시각도 많지만 실제 그런지 아닌지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해보지 않고선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한국 국민이 민주주의로 뽑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일본 국민으로서 존중할 필요가 있다.

―북·일 관계에 대한 구상은.

▲과거 30년 전 김일성 주석이 생존할 당시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만나보지 않아 어떤 지도자인지, 뭘 생각하는 정권인지 역시 판단할 도리가 없다. 북한이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북·일 관계에서 보자면) 평양과 도쿄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게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통일 시에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게 될지,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될지 그런 문제까지 시야에 놓고 일본의 한반도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북·일간 연락사무소 설치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일본의 총리가 된다면 북·일 대화에 적극 임할 생각인가.

▲납치,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해 북·일 간에 정부 대 정부로서 확실한 교섭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핵 문제에 있어 북한이 상대하려는 건 미국뿐이며, 여태까지 북·일 관계는 북·미 관계에 좌우돼 왔다. 모든 안보를 미국에 맡기는 외교는 제대로 된 외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2002년 9월)한다고 했을 때 미국의 반대가 컸다. 일본 외교로선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 일본 독자적 외교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게 비록 인기를 끌 소재가 못된다고 해도 말이다. (그다음 단계인) 북·일 간 국교정상화와 관련해선 핵, 미사일, 납치 3대 문제의 '선 해결, 후 수교' '선 수교, 후 해결' 두 가지가 있으나, 어느 쪽이 메리트가 있는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국교정상화를 무조건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나 그런 논의를 빨리 전개하는 편이 좋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추진 중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도 헌법 9조2항(전력 보유 금지)을 아예 없애는 방안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일본 헌법 9조2항엔 육군도, 해군도, 공군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면 이건 뭔가.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 공군자위대는 뭔가. 군대라는 명칭은 안되고 자위대라는 명칭으로는 된다는 것인가. 일본은 그간 국제법을 제대로 지켜왔다. 현실과 헌법에 갭이 크다는 건 그다지 옳은 상태는 아니다. 국민을 이해시키기 위해 9조2항을 변화시키는 것은(개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일본 보수정치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도 보수의 위기다. 보수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은.

▲보수라는 이데올로기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보수는 모든 것들을 수용하기 때문에 대립구조를 만드는 건 보수가 아니다. 매우 좁은 역사관이나, 편협한 의미에서 내셔널리즘 같은 건 보수의 본질적 가치가 아니다. 세계 평화와 국가의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제1의 가치다.

이시바 前 자민당 간사장은… 전쟁 반성않는 현실 비판한 '합리적 보수'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수정주의 역사관에 대해선 단호히 비판한다. 한·일간 과거사 갈등에 대해선 "일본이 전쟁 책임과 마주하지 않은 게 문제의 근원"이라며 뼈아픈 성찰을 내놓은 바 있다. 반면 징용 문제 해법에 있어선 아베 정권과 궤를 같이하고, 개헌론에 서 있다.

'합리적 보수'로 자민당 온건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중한 성미의 명문 게이오대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이다. 일본에선 드물게 기독교 신자다.
'군사 오타구'이며 프라모델 만들기가 취미다.

△63세 △게이오대 법학부 △중의원 11선 △자민당 간사장 △방위상 △지방창생담당상 △농림수산상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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