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어떻게 미국에 이런 일이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22 17:14

수정 2020.04.22 17:20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실패
'우리는 다르다' 오만이 원인
경제 민족주의 기승 부릴 듯
[최진숙 칼럼] 어떻게 미국에 이런 일이
극우 기세에 바람 잘 날 없던 이탈리아의 코로나발(發) 붕괴는 그럴 수 있다 치자. 경제력, 군사력, 기술력 세계 최강 미국의 코로나발 초토화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봉쇄령에 지친 미국인들은 이제 총까지 들고 나와 셧다운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확진자수는 80만명을 넘었다. 세계 모든 국가를 압도하는 이 수치만으로도 공포스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책임과 비난의 과녁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다. 중국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상당한 은폐와 정보 비협조는 명백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전체가 죽음의 시신으로 뒤덮이고 있을때 미국은 무얼 하고 있었을까. 미국만의 문제는 분명 아닐 테지만, 국력 대비 가장 부실한 대응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상위 1%에 최적화된 미국 의료시설의 폐해는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국 의료보험을 쥐고 흔드는 수백개 보험회사가 이익 각축전을 벌이는 사이 보험료와 치료비는 상상초월 수준으로 올랐다. 가령, 평균수준의 병원에서 쌍둥이를 출산해 한달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을 경우 4억원이 찍힌 청구서를 받게 된다. 보험이 없으면 전액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보험 미가입자가 인구 10%에 육박한다. 전염병 초기 사망자 현황을 보면 상당수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계층 간 불평등, 양극화 이슈는 그래서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사실 격차를 줄이는 데 정부와 의회는 그렇게 애쓰지 않았다. 빈둥대며 온갖 복지혜택만 찾아 누리는 한 흑인여인에게 붙은 별명 '웰페어 퀸(Welfare Queen·복지여왕)'이 이를 말해준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76년 선거에서 복지와 세금 낭비의 주범으로 웰페어 퀸을 지목해 공격한 뒤 대성공을 거뒀다. 분노한 유권자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지원을 일종의 악습으로 여겼다.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작 웰페어 퀸은 레이건이 지어낸 허구라는 게 밝혀졌지만 그의 앞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대혼란은 '미국은 다르다'는 납득하기 힘든 오만과도 관련있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대변동'에서 미국인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꼽은 게 '미국 예외주의'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다른 국가에서 성공한 방법을 교훈으로 얻으려는 의지와 적극성이 부족한데 이것이 미국의 중대한 결함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유일무이한 국가여서 다른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것도 미국에는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며 "얼토당토않는 허튼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가 내포된 '황색공포(Yellow Peril)'가 이렇게 강렬한 것인지도 새삼 확인됐다. 5세기·13세기, 훈족과 몽골군은 말을 타고 그들의 초원에서 달려나와 무자비하게 유럽을 짓밟았다. 황색공포는 이때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역병은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의 얼굴 동양의 것이기에 미국, 서구는 그로부터 안전하다는 선긋기가 팬데믹에 치명타를 날렸다. 21세기 중세시대 사고의 결정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대한 부양책으로 경제살리기에 올인하는 한편, 중국 때리기와 이민금지 같은 초강력 쇄국조치를 코로나 대응실패 돌파 카드로 잡고 있다.
중국을 향한 분노와 화염, 자국 노동자·산업 지키기는 재선에 유리한 어젠다다. 경제민족주의 행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세계질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 수혜자인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다.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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