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세계 주요 증시의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올해 배당 규모를 크게 줄일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은 바이러스 확산에 대비해 주주 가치보다 생존이 더욱 중요하다며 현금 확보에 몰두하는 분위기다.
26일(현지시간) 미 금융 주간지 배런 등에 따르면 스탠더드푸어스(S&P) 500지수 내 배당귀족지수는 23일 기준으로 올해 들어 19% 하락해 같은 기간 S&P500지수의 하락률(12.9%)를 밑돌았다. 기업들이 배당을 줄이면서 배당주에 대한 인기가 식었기 때문이다.
■수십년 만에 기록적인 배당 축소
배당귀족지수는 시가총액이 30억달러(약 3조6807억원) 이상인 S&P500 종목 가운데 25년 연속으로 배당금을 늘리고 직전 3개월 평균 하루 거래량이 500만달러 이상인 기업들을 모은 지수다.
엑손모빌과 쉐브론은 일단 배당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나 이들의 배당률은 각각 8%와 5.9%로 같은 화학 업계인 다우(8.6%)보다 낮았다. 배런에 의하면 26일 기준으로 S&P500 지수 내 9개 기업이 4월 배당 중단을 선언했으며 다른 6개 기업은 배당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관광 및 소비업종으로 바이러스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카지노 업체 라스베이거스샌즈와 크루즈 업체 카니발, 의류 기업 갭은 이미 배당을 중단하기로 했고 보잉과 포드도 배당을 멈췄다. 세계 최대 석유 서비스 기업인 슐룸베르거도 이달 배당을 75% 줄인다고 밝혔다. 미 골드만삭스는 올해 S&P500 기업들이 배당 규모를 25% 줄인다고 내다봤다.
배당 기피 현상은 바다 건너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통신은 26일 보도에서 홍콩 증시 기업 가운데 126개 업체가 올해 1·4분기에 배당을 건너뛰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는 블룸버그가 해당 집계를 시작한 1985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중국 본토 증시 기업 중 84곳도 이달 배당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르노 자동차는 1·4분기 매출이 19.2% 감소하자 올해 배당을 포기했으며 HSBC, 스탠다드차타드, 바클레이스 등 영국 5대 은행들도 올해 배당을 멈추기로 했다. 아울러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 에퀴노어는 23일 발표에서 분기 배당금의 3분의 2를 깎겠다고 발표했다. 미 유니언뱅크의 마가렛 리드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오는 5월 기업들의 실적 발표 이후 주주들의 반응이 갈릴 것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배당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그 결과 주주 구성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 마련에 집중
기업들의 배당 축소 움직임은 '자의반 타의반'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27일 성명에서 은행들이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상황에서 중소기업과 가계 대출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며 오는 10월 1일까지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을 금지했다. 영국 역시 은행들에게 배당 자제 권고를 내렸다. 미국의 경우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이달 발표에서 은행들의 배당을 막을 필요는 없다고 밝혔으나 금융권이 아닌 기업 가운데 나랏돈을 받는 기업들은 강제로 돈줄이 묶였다. 미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말 5000억달러 규모의 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대출 상환 1년 뒤까지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현재 기업들은 굳이 나라에서 막지 않더라도 현금 확보를 위해 배당을 줄여야 하는 처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4일 보도에서 미 시장조사업체 팩트셋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세계 3400개 상장사들의 매출이 앞으로 6개월 동안 전년 대비 30% 떨어질 경우, 상장사 24.1%의 현금 유동성이 바닥난다고 예측했다. 미 JP모간은 연준의 허가에도 불구하고 지난 6일 발표에서 미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경기 침체가 현실로 드러난다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배당 연기를 검토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중국 수초우 증권의 첸 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기업들이 팬데믹 시기에 생존을 위해 현금을 보존하고 있다"며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은 현금이 왕이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배당뿐만 아니라 주가 부양을 위해 자주 진행했던 자사주 매입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JP모간은 배당과 별도로 자사주매입을 이미 중단했고 델타항공도 뒤를 이었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배당과 자사주매입을 동시에 자제하고 있다며 팬데믹때문에 주주가치보다 생존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미 생활용픔 제조사 프록터앤드갬블(P&G)은 지난 14일 발표에서 코로나19로 회사 매출이 늘었다며 오히려 분기 배당률을 6%로 높인다고 밝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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