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전문·책임성 낮추는 '공무원 순환보직'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27 18:17

수정 2020.04.27 18:17

[기자수첩] 전문·책임성 낮추는 '공무원 순환보직'
취재를 하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가끔 마주한다. 진퇴양난이랄까. 주로 공직사회 인사시즌인 연초에 자주 겪는다. 바로 현재 담당자와 과거 담당자의 '업무 핑퐁'이다.

현 담당자는 업무를 맡은 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단다. 직전 담당자는 남의 업무여서 설명하기 곤란하단다. 어쩌란 말인가. 물론 그분들이 서로 책임을 미룬다고 해서 아주 길이 없는 건 아니다.
기자 입장에선 말이다. 학계, 민간전문가 혹은 그들의 상급자 등을 폭넓게 취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는 '어쩔 수 없지' 하며 조용히 전화를 끊을 테다. 누군가는 한껏 목소리 높여 항의하고 끊었을 테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미루기를 능사로 하진 않는다. 다시 확인해본 후 연락을 주겠다는 공무원이 다수다. 아직 며칠 안돼서 잘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현 담당자가 책임지고 답하는 게 정답이긴 하다.

그래도 찝찝함은 남는다. 지금 자리에 오기 전 발생했던 일은 나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는 그대로여서다.

보통 공무원은 2년 정도면 인사이동을 한다. 종전과 전혀 다른 업무를 맡는 일도 부지기수다. 본인이 추진한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할 때도 많다. 새롭게 시작한 업무가 결실을 보려면 최소 2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고자 '전문직 공무원 제도'가 도입됐다. 특정 전문분야의 장기간 근무를 유도해 정책서비스 수준을 높이려는 취지다. 순환보직이 전문성·책임성 저하를 일으킨다고 본 것이다.

현재 9개 부처 200여명이 전문성을 갈고 닦고 있다. 작년 1월 첫 전문직 고위공무원도 탄생했다. 2017년 도입된 전문직 제도는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한 학계 인사는 본인이 겪은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이야기는 이렇다.
전문직 공무원 제도를 설계하던 한 공무원은 줄곧 본인이 곧 도입될 해당 제도를 이용, 전문직이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그 공무원은 일반직 승진을 선택했다는 결론이다.
물론 각자의 사정은 있으니 일반화할 순 없지만, 이 학자가 들려준 사례는 전문직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보완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co@fnnews.com 안태호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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