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두 도시 이야기, 서울과 도쿄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29 17:43

수정 2020.04.29 18:50

코로나 위기에 판이한 대처
日 집단주의 함정서 허우적
K방역엔 세계 찬사 이어져
[노주석 칼럼] 두 도시 이야기, 서울과 도쿄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고, 믿음의 세기이자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면서도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지만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성서와 코란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구절이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기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비교하면서 상반된 두 도시 시민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걸작이다.

이야기의 원조는 유럽 양대 도시이지만 이후 대상 도시는 끊임 없이 바뀐다.
전 세계에서 공연된 브로드웨이 걸작 오페라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평양, 수원과 개성, 속초와 원산을 각각 비교하는 3부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숱한 도시가 '두 도시 프레임' 안에서 명멸했다.

흔히 인류문명사를 BC(기원 전)와 AD(기원 후)로 나눈다. 후세 역사가는 21세기 이후의 시대를 BC(코로나 전)와 AC(코로나 후)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던진 화두는 그만큼 엄혹하다. 멈춤을 갈망하던 인류에게 봉쇄의 고통을 안겨줬다. 기아보다 끔찍한 경제한파가 진행 중이다.

이 시대 두 도시를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도쿄로 상정해 보면 어떨까. 미증유의 세상을 맞은 두 도시는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은 바이러스의 불길을 거의 잡은 반면 도쿄는 아직 화염에 싸여있다.

왜 서울은 성공하고, 도쿄는 실패했을까. 문학인류학적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무렵 출간된 일본 문명비평서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는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 같은 집단주의를 일본문화의 특징으로 파악했다.

아베 정부는 확진자 숫자 급증이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코앞 도쿄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진단조사를 미뤘다. 개인을 버리고 집단에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외부의 힘에 따르는 것이 집단주의이다. 시민들은 마스크가 없어도 반발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빠르고 정확한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결국 감염 억제에 성공했다. 확진자 동선 공개시스템은 통행제한, 봉쇄 같은 국민 기본권과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침해하지 않았다.

한국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일컬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 이후 한국의 위상은 최상급으로 격상됐다. 집단연대와 투명성 그리고 법치는 'K방역'의 다른 이름이다. 전 세계가 앞을 다퉈 경의를 표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향후 선진국 순위가 바뀔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은 올라가고 일본은 내려간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코리아 판타지'가 된 셈이다. 찰스 디킨스가 갈파한 프랑스 대혁명 때 런던과 파리처럼 서울과 도쿄의 명암이 뚜렷하다.
도쿄는 최악이고, 서울은 최상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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