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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언택트와 리바이어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05 16:18

수정 2020.05.05 16:18

[fn논단] 언택트와 리바이어던
17세기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난무하는 자연상태를 극복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연권의 일부를 국가에 위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대신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처럼 막강한 힘으로 개인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할 임무를 진다. 시민들로 하여금 군주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해 전체주의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홉스의 본뜻은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사회계약을 통해 개인의 생존을 도모하자는 것이어서 자유주의 사상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필자가 오래전 미국 로스쿨에 유학가서 처음 들었던 강의가, 법률가는 사물의 양면을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분쟁해결에 변증법적 대심구조에 입각한 사법체계가 굳이 필요한 이유는 일방적 주장을 우기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한곳에 설 수밖에 없는 내가 세상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모두 들여다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언택트(uncontact)가 유행이다.
고객과 직원이 접촉하지 않고 거래하는 일을 말하는데, 사전에도 없는 엉터리 조어라고 비웃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건 유럽이건 아직 이런 경험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용어가 없을 뿐이다. 쇼핑과 외식이 집 안에서 해결되고 학교 강의도 온라인으로 하며 직장 일까지 재택근무로 이뤄지고 있다. 대기업 주주총회 전자투표도 올해 무려 968개 회사에서 했다. 강한 거부감에 직면해있던 일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일거에 실현되고 있다.

언택트는 4차 산업혁명이 만드는 놀라운 기술발전으로 개인이 원자화되는 현상이지만, 역설적으로 권력의 변형과 강화까지 동반한다. 국내외에서 구글, 아마존이나 네이버, 쿠팡 같은 정보기술(IT) 플랫폼들이 거대화하고 분쟁해결 같은 일부 정부기능까지 대신한다. 정부는 전염병을 퇴치하면서 외출제한이나 개인정보 활용 등에서 엄청난 권한을 별다른 견제 없이 행사하게 됐다.

문제는 민간 플랫폼과 정부가 어느새 원래 리바이어던, 즉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으로 변신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무장한 초연결시대 정보통신기술(ICT)이 '빅 브러더'를 가능케 하고, 정치권력은 계층 간 불평등을 야기한 자본주의 모순을 부추겨 지역주의,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언택트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연장선이자 돌이키기 어려운 시대정신이어서 양면의 균형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생기발랄한 플랫폼을 작동시키는 데 불합리한 명목으로 발목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부 거대 플랫폼은 혁신으로 커가는 대신 암암리에 독점력을 남용해 소비자 주머니를 털려 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정부가 시퍼런 정의의 칼날을 아끼지 않는 것이 홉스가 불러낸 리바이어던이다.
정치판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영역이건 시민이 동의하지 않는 부조리 권력은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 성서 속 리바이어던의 제물로 바쳐질 일이다.
전염병 치료와 일상의 편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 시기, 두 눈 부릅뜨고 두 얼굴의 리바이어던을 감시하는 법률가의 능력을 시민들 모두가 발휘할 일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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