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7일 오후 2시50분쯤 용산구 이태원동 야트막한 오르막길에서 이주 노동자 4명이 한곳을 바라본다. '킹클럽'.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건물 간판에 적힌 단어다.
'킹클럽' 건물 맞은편에는 취재진 10여명이 삼각대로 카메라를 바닥에 고정한 채 진을 친 상태다. 오가는 시민이 스마트폰을 꺼내 굳게 닫힌 'K클럽' 건물을 찍고 취재진도 찍는다.
이날 질병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A씨가 지난 2일 킹클럽을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킹클럽은 SNS를 통해 "영업일 모두 매일 클럽 내부를 자체적으로 방역하고 입장시 발열 체크, 발열 여부와 해외 방문 이력 등을 포함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재입장시 필수 손 소독 절차, 마스크 착용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쳤으나 확진자 동선에 노출됐다"며 "해당 확진자에 대한 추측성 소문과 신상 공개 등은 자제해 달라"고 밝혔다
보건당국이 밝힌 A씨가 접촉한 인원은 "최소 57명"이다. 이태원 주변을 비롯해 A씨의 재직 회사가 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일대에서는 집단 감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태원에서 20여년째 살고 있다는 정모씨(52)는 "이곳에서 워낙 떠들썩한 일이 많아 어지간한 일은 놀랍지도 않다"면서도 "불안하긴 불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푸른색 마스크를 착용한 정씨는 킹클럽 정문에서 1m 떨어진 채 2~3분간 해당 클럽 쪽을 살펴봤다.
정씨는 "확진자 동선을 표시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보면 이태원 쪽 코로나19 발생 건이 절대 적지 않았다"며 "정부가 코로나19를 제대로 관리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킹클럽 건물 파란색 벽에는 하얀색 낙서가 가득했다.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운 어지러운 문구·그림 속에서 영문자 'PATHOS'(연민) 'SORRY'(미안하다)‘가 눈에 띄었다. 킹클럽은 성소수자들이 주로 찾는 업소로 알려졌다.
이곳 앞을 오가는 시민들은 "도대체 문을 왜 열었대" "수백명이 다녀갔대" "무서워서 밖을 다닐 수 있냐"며 수군거렸다.
킹클럽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34)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클럽에서 확잔지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감염 걱정도 걱정이지만 손님 떨어질까 더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이집트 출신의 노동자들은 인근 상점에서 짐을 옮기고 있었다. 파키스탄 남성(40대 남성)이 운영하는 상점 앞 도로에는 한 방송사 취재진 차량이 도착했다. 파키스탄 남성은 "무슨 구경 났다고 이곳에 차를 세우느냐"고 서툰 한국어로 취재진에게 항의했다.
킹클럽 바로 옆 상점의 계산대에서 일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여성(25)은 "감염 걱정 때문에 일을 안 할 수도 없지 않으냐. 돈을 벌어야 한다"며 "코로나19가 한국에서 한풀 꺾이고 있어 사실 그렇게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여성은 머리에 검은색 히잡(이슬람식 스카프)을 두른 채 "확진자 A씨가 성소수자란 얘기도 들어 알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요"라고 되물었다.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A씨를 조롱하는 글이 가득하다. 전문가들은 A씨의 감염으로 촉발한 집단감염의 가능성은 분명히 차단해야 하지만 그의 성적 지향을 겨냥해 비난하는 분위기는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집단을 향한 시민들의 혐오감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리면서 공격적으로 드러나곤 한다"며 "거기에는 바이러스 감염 공포증이 주요 이유로 작용하겠지만 특정 집단을 비이성적으로 매도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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