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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근 지성준과 되는 집안 롯데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1 14:09

수정 2020.05.11 14:09

[파이낸셜뉴스]

경남고 시절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 출전한 포수 정보근. /사진=fnDB
경남고 시절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 출전한 포수 정보근. /사진=fnDB


모리 마사아키는 수비 전문 포수였다. 꼬박 20년을 선수로 뛰었지만 3할 타율은 한 번도 해내지 못했다. 두 자리 수 홈런을 때린 것도 두 차례 뿐이다. 그런데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모리는 1955년 두 명의 동기생 포수와 함께 요미우리에 입단했다.

계약금 600만 엔, 연봉 36만 엔. 입단 동기 가토는 주코고를 여름 고시엔 우승으로 이끈 포수였다. 셋이 2군 주전 포수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가장 먼저 1군에 올라간 것은 모리였다. 그러나 1군에는 은퇴를 앞둔 히로다와 호타, 준족, 강견의 후지오가 버티고 있었다. 이들을 이기기 위해선 수비밖에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볼 배합과 블로킹, 포구, 2루 송구에 집중했다.

구단은 후지오에게 외야 전향을 권유했다. 아무래도 수비는 모리가 낫다는 평가 때문. 후지오는 외야 수비를 하다 어깨를 다쳐 은퇴했다. 20년 동안 모리가 물리친 포수는 24명이나 된다. 그들의 계약금을 모두 합치면 5억 엔(약 57억 원). 지금의 가치로는 훨씬 더할 것이다.

포수에게는 수비가 더 중요하다는 벤치의 판단은 옳았다. 모리는 12번이나 팀을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 가운데는 빛나는 V9(1965년~1973년 9년 연속 우승)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세이부 라이온즈 감독으로 팀에 6번 우승을 안겨주었다. 이토라는 좋은 포수를 발굴해 1980년 대 세이부 전성시대를 열었다.

지난 5일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롯데 엔트리가 발표되었을 때 조금 놀랐다. 포수 지성준(26)이 빠져서다. 지난 해 11월 롯데에 합류한 지성준은 연습경기서 펄펄 날았다. 7타수 4안타로 0.571. 포수가 아니면 대타로라도 쓰임새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도 개막전 2군으로 결정됐다.

허문회 감독은 “(지성준을) 반쪽 선수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밝혔다. 확 와 닿지 않았다. 롯데는 지난 해 포수 부재로 골머리를 앓지 않았나. 알토란같은 선발 장시환(한화)을 내주고 지성준을 데려 왔는데.

이 어려운 결정의 배경에는 정보근(21)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정보근은 지난 해 15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겨울 동안 확 달라졌다. 전지훈련과 연습경기를 통해 코칭스태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을까.

정보근은 경남고 시절 수비 좋은 포수로 주목받았다. 전광열 경남고 감독의 신뢰가 두터웠다. 서준원이 3학년이던 2018시즌을 앞두고 정보근의 졸업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서준원-노시환(한화)으로 투·타는 안정됐으나 안방이 불안하다는 진단 때문이다.

연습경기서 펄펄 날았지만 2군에서 시작한 지성준. /사진=뉴스1
연습경기서 펄펄 날았지만 2군에서 시작한 지성준. /사진=뉴스1


지성준의 롯데 행이 발표되었을 때 가장 긴장한 선수는 정보근이지 않았을까. 3년 만에 주전 자리를 차지하나 싶었는데. 그래서 더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넋 놓고 무장해제 상태로 지냈다면 지금의 정보근은 있을 수 없다. 지금의 롯데도 마찬가지다. 11일 현재 1위다. 지난 해 꼴찌 팀이 맞나.

1966년 6대학 리그 타격 3관왕 오하시가 요미우리에 들어 왔다. 너, 나 없이 모리는 끝이라고 여겼다. 모리는 그 후로도 8년을 더 주전 포수자리를 지켜냈다.
먼저 은퇴한 쪽은 오하시였다. 타격 좋은 지성준이 들어오자 정보근이 좋아졌다.
잘 되는 집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