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창업

회계사·의대생 벗어던지고 창업의 바다에서 신대륙을 찾다 [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3 17:08

수정 2020.05.1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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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일궈낸 그들
탈세 관행에 회의감 느낀 회계사
"외국처럼 깨끗하게 안될까"
휴학하고 창업한 의대생
"치료보다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데 매력"
잘나가던 애널리스트
"보수적인 금융계, 일하면서 늘 갈증"
'파이' 나누기보단 새로 만들고 싶어
오늘도 꿈 향해 한걸음 전진
지난해 신설 스타트업 법인 수는 10만8874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규 벤처투자 금액도 최초로 4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변에서 '창업한다' '스타트업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됐고, '제2벤처 붐'이란 말은 업계에서 클리셰(진부한 표현)가 됐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여전히 불안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스타트업의 1년 생존율은 62.4%, 5년 생존율은 27.3%다.

창업하면 그해에 10곳 중 4곳이 망하고, 4년이 지나면 살아남은 곳 중 절반 가까이가 망하는 셈이다.


지난 7일 서울 선릉로 디캠프에서 만난 아이템스카우트 최경준 대표는 '왜 스타트업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자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안정적 삶을 살고 싶은데 창업을 한다? 최 대표는 "역설적이게도, 불안정적인 일을 해야 안정적이에요"라는 모를 얘기를 하며 운을 뗐다.

피트메디를 창업한 김운연 대표(24·앞줄 오른쪽)와 김요섭 최고기술책임자(CTO·32·뒷줄 왼쪽)는 연세대 의과대학 동기다. 피트메디는 근력 운동을 기록해주고 개인 맞춤형으로 건강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개발, 제공한다. '이 서비스를 업계 상황상 지금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휴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동기들은 본과 2학년으로 진학했지만, 그들은 '휴학생' 신분으로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피트메디를 창업한 김운연 대표(24·앞줄 오른쪽)와 김요섭 최고기술책임자(CTO·32·뒷줄 왼쪽)는 연세대 의과대학 동기다. 피트메디는 근력 운동을 기록해주고 개인 맞춤형으로 건강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개발, 제공한다. '이 서비스를 업계 상황상 지금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휴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동기들은 본과 2학년으로 진학했지만, 그들은 '휴학생' 신분으로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아무리 안정적인 직장이라도 대부분 50대에 퇴직하잖아요. 100세 시대인데, 50대까지 따뜻한 온실에서만 살던 직장인이 과연 그 이후에 안정적인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가장 안정적인 은행업도 구조조정을 하는 세상이에요. 저는 젊을 때 창업을 해서 이젠 '사막에 갖다놔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됐죠. 그런 의미에서 창업이 가장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출렁이는 바다는 위험하다? 그건 육지인들만의 생각 아닐까. 항상 단단한 육지에서 사는 이들이 바다로 나오면 위험을 느낀다. 하지만 바다인들에겐 두 다리를 놓고 있는 모든 곳이 안정적이다. 큰 창문 사이로 선정릉을 바라볼 수 있는 디캠프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만든 스타트업 보육·투자기관이다. 이곳엔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바다인'들이 신대륙을 찾아 도전하고 있다. 나이도, 성별도, 출신도 모두 다르지만 '스타트업'이란 도전을 하며, '한국의 마크 저커버그'를 꿈꾸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아이템스카우트를 세운 최경준 대표(32·왼쪽 첫번째)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캐피털그룹에서 일했다. 동기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있었지만 최 대표는 세 번째 창업을 하고 있다. 블록체인 관련 창업을 했지만 정부 기조와 맞지 않아 검찰 조사를 받아 문을 닫았고, 두번째 사업도 다른 이에게 지분을 넘기고 나왔다. 현재는 문승우 공동대표와 기업들에 아이템 선정과 시장 분석을 돕는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아이템스카우트를 세운 최경준 대표(32·왼쪽 첫번째)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캐피털그룹에서 일했다. 동기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있었지만 최 대표는 세 번째 창업을 하고 있다. 블록체인 관련 창업을 했지만 정부 기조와 맞지 않아 검찰 조사를 받아 문을 닫았고, 두번째 사업도 다른 이에게 지분을 넘기고 나왔다. 현재는 문승우 공동대표와 기업들에 아이템 선정과 시장 분석을 돕는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하우투비즈랩을 창업한 김홍락 대표(49·앞줄 가운데)는 공인회계사다. 반평생 가까이 회계사로 회계법인에서 일했고 동료들과 직접 회계법인을 만들어 운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타트업을 차려 스타트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모바일 회계장부 앱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회계사로 일하면서 '탈세 관행'의 공범이 된 것 같다"고 고백하며 그 관행을 고치고자 창업을 한 것이다. 사진=박범준 기자
하우투비즈랩을 창업한 김홍락 대표(49·앞줄 가운데)는 공인회계사다. 반평생 가까이 회계사로 회계법인에서 일했고 동료들과 직접 회계법인을 만들어 운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타트업을 차려 스타트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모바일 회계장부 앱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회계사로 일하면서 '탈세 관행'의 공범이 된 것 같다"고 고백하며 그 관행을 고치고자 창업을 한 것이다. 사진=박범준 기자

■그들은 왜 스타트업을 하는가

회계사, 의대생, 애널리스트…. 스타트업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그러나 디캠프에서 만난 세 스타트업 대표들의 출신이 이랬다. 하우투비즈랩을 차린 김홍락 대표는 회계법인까지 운영하던 공인회계사다. 피트메디를 함께 창업을 한 김운연 대표와 김요섭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는 의대생이다. 심지어 김요섭 CTO는 KAIST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다가 의대를 들어왔다. 아이템스카우트를 만든 최경준 대표는 베이징대 경영대를 나와 펀드 애널리스트를 하고 사모펀드를 다녔던, 말 그대로 스펙 빵빵한 글로벌 수재다.

그런데 이들은 왜 스타트업을 하게 됐을까. 김홍락 대표는 "기장 업무를 많이 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탈세 공범자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탈세 관행이 심하다. 회계사나 세무사 같은 세무대리인이 없으면 오히려 탈세가 없을 텐데, 세무·회계업무 자체가 힘들다 보니 중간자의 역할이 커지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고객의 탈세를 도우면서 관행이 생겼다. 외국처럼 깨끗한 회계관행을 만들고 싶어서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경준 대표는 "다니던 회사들도 만족스러웠다. 정말 뛰어난 사람들과 일하면서 지적인 자극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금융계에 있는 분들은 보수적이고 위험 회피형이다. 그러나 난 위험감행(risk taking)형이다. 일하면서 갈증을 느끼다가 결국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하게 됐다"고 답했다.

4인 중 가장 어린 김운연 대표는 "의사도 좋은 직업이다. 그러나 대신 해주는 일보단 내가 직접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의대 수업을 듣다 보면 질환을 치료하는 것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방향으로 의학의 흐름도 바뀌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 아직 없거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영역을 개척하고 싶어서 대학도 휴학하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김요섭 CTO는 "살면서 사회에 기여한 경험, 그로 인한 감동이 크게 오더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일해보고 싶었다. 그중에 '사업'이란 영역은 '파이'를 나누는 게 아니라 파이를 만들 수 있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없는 걸 만들고 싶어서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 주변엔 "창업하지 마라"

김홍락 대표는 세 아이의 아빠다. 아내는 재테크도 예금, 적금을 좋아하는, 그 누구보다 안정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창업을 했다. "가족을 희생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힘들었다. 사업만 놓고 보면, 과정은 너무 재밌다. 과정만 계속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지속 가능하려면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하더라."

최경준 대표도 이에 공감했다. "아내가 임신을 했을 때 회사를 나왔다. 아내가 '사업만은 안 할 것 같아서 결혼했다'고 하더라(웃음). 어린 시기에 창업을 하다 보니 경험이 부족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한 더 나은 결정을 못한 것 같아 힘들 때가 많았다. 가족들 덜 고생시키고, 동료들 덜 고생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제 와서 그 부분이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갓 서른을 넘은 김요섭 CTO는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투자집행이 어그러졌는데 법인설립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개인대출까지 받게 됐다.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나름 덤덤하게 진행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가 크더라"고 말하자 창업선배인 최 대표는 "어느 순간 그렇게(개인대출) 된다. 그때부터 회사의 리스크가 개인의 리스크로 번지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좋은 창업이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주변 사람들에겐 '하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 것 같다'는 환상, '경험 삼아'라는 객기만 갖고는 절대 이 힘든 일을 버텨낼 수 없다는 거다. 창업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갖는지 확실히 자각하고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홍락 대표는 "후배들이나 친구들, 지인들이 물어보면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한다. 어차피 할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애매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역설했다. 최 대표는 "아이템을 정하고 창업을 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창업에 맞는 사람인지, 창업을 해도 대표에 맞는 사람인지를 먼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운연 대표는 "인생 한 번이다. 사는 시간 모두가 소중하다. 일주일 중 쉬는 이틀을 위해 일하는 5일을 희생시키는 건 불행하다. 자신이 하고 싶고 행복하다면 도전하는 것도 좋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꿈"

세 번째 스타트업인 최 대표는 "이번에도 실패해도 또 창업할 것 같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얼마 전에 카카오벤처스에서 투자를 진행하는데 대표님 '우리 투자 받아줘서 고마워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믿음'이란 걸 받았을 때 그 믿음에 보답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고 전했다.

"허황돼 보이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성공의 이유는 하나다. 한 인물의 성공이 다음 세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거 우즈는 단순히 스포츠 스타를 떠나서 골프란 스포츠를 성장시킨 사람이다. 나의 성공을 통해서 다음 세대를 감화시키고 더 나은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김요섭 CTO는 "아까도 말했지만 파이를 나누기보단 새로 만들고 싶다. 그게 참 매력적이다. 의료 트렌드가 치료에서 예방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그걸 정부가 정책으로 하면 업계 반발도 있고 부작용도 생긴다. 그러나 사업으로 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시장 자체를 움직일 수 있다.
긍정적이고 부드럽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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