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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슬기로운 감빵생활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4 17:17

수정 2020.05.14 17:17

[fn논단] 슬기로운 감빵생활
지구인이 모두 코쿤족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누에고치처럼 강제로 코쿤(Cocoon) 속에 갇혔다. 감옥을 탈출하려면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마스크스가 돼야 한다.

구보PD는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궁리하다가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떠올렸다. 남자 주인공은 여동생의 성폭력범을 응징하다 감방에 갔다. 야구 투수인 사내는 다시 공을 던지며 감빵생활을 버티어낸다.
드라마PD 구보씨,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히치하이킹해서 '쇼생크' 높은 담장을 뛰어넘자!

빌리 와일더 감독. 명성은 구로사와 아키라. 알프레드 히치콕처럼 높지 않지만,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이야기꾼이며 천재 감독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면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를 지하철 통풍구에 세워 치마를 팔랑거리게 한 감독이다. 먼로의 그 섹시한 모습은 대형 조형물로 탄생해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녀의 치마 밑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선생은 평생 60편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 7년 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선셋대로, 비장의 술수, 사브리나, 이중배상, 하오의 연정, 당신에게 오늘밤을, 포춘쿠키, 페도라, 제17포로수용소…. 아카데미상 후보에 21차례나 올랐고 7개의 상을 탔다. 1945년도엔 알코올중독자의 몰락을 그린 '잃어버린 주말'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색상,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주위에 술단지에 빠진 자가 있으면 꼭 강추해 주시기 바란다. 그의 영화는 재미있다. 웃음과 위트가 신과 시퀀스마다 넘친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빛나는 아이디어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는 맨해튼 중심에 작은 아파트를 가진 보험사 말단 직원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집을 회사 간부들의 데이트 장소로 빌려주며 고속 승진한다. 하지만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가 선배를 따라 자신의 아파트로 사랑하러 갈 줄은.

'하오의 연정'은 탐정의 딸 오드리 헵번과 그의 아빠가 뒷조사 중인 바람둥이 재벌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4인조 집시밴드! 천재 감독에게 기립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순진무구한 순경과 닳고 닳은 매춘녀의 사랑을 그린 '당신에게 오늘밤을', 특종에 미친 기자의 왜곡을 보여주는 '비장의 술수'.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여배우의 광기를 보여주는 선셋대로. 모두 오늘날 할리우드의 황금률 'Idea is King'을 만들어낸 표본들이다.

멋진 영화는 자유를 준다. 영화를 보는 2시간, 우리는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가 등장인물과 함께 한다. 주인공을 편들고 악당을 미워하며 그들이 만드는 희로애락에 동참한다. 이런 엠퍼시(감정이입)가 바로 영화예술이 만들어내는 자유시간 시네마천국이다.


구보씨는 주장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파라다이스가 있다면 그곳엔 꼭 영화관이 있어야 한다.
"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시네마천국에 가서 자유를 들이켜시라. 마치 낙타가 물을 저장하듯 그 자유를 당신의 가슴속 깊이 저장했다가 세상의 속박과 배신을 마주칠 때 힘껏 내뿜어 중화시켜라. 구보씨, 그래서 강추한다. 미래 또 바이러스로 감옥에 갇히면, 꼭 빌리 와일더 선생의 영화에 올라타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영위하시길!

이응진 경기대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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