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부산다운 부산 만들기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0 16:56

수정 2020.05.20 16:56

원도심 재생 프로젝트 가동
부산 특유의 킬러 콘텐츠로
해양도시 메카로 거듭나길
[노주석 칼럼] 부산다운 부산 만들기
남포동·광복동·중앙동은 바다였다. 1892년 부산매축주식회사라는 일본회사가 영주동과 중앙동 사이 영선산과 옛 부산시청(롯데백화점 광복점) 자리 용미산을 깎아 메웠다. 부산진역이 있는 동구 수정동 동부경찰서 구내에는 '부산진매축기념비'가 남아있다.

1939년 부산진 일대 매립사업을 끝낸 기념으로 세웠다. 축구장 210개에 맞먹는 150만㎡ 규모의 엄청난 땅이 이때 생겼다. 1983년 부산시가 고관 입구에 세운 '부산진지역매축지비'에는 "구관(고관), 부산진, 범일동, 문현동, 적기에 이르는 해안을 모두 메웠다"고 기록돼 있다.


고관(古館)이라는 지명은 초량 왜관으로 옮겨가기 전의 옛 왜관이라는 뜻이다. 초량왜관은 용두산공원을 중심으로 남포동·광복동·대청동·동광동·중앙동 일대에 걸쳐 있었다. 10만평(33만578㎡)의 터에 상주 왜인만 500여명에 이르렀다.

이른바 '부산 원도심'의 기원이다. 일제강점기 동래부를 제치고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광복 뒤엔 부산시 중구로 격상됐다. 부산포를 다스리던 동래부는 동래구로 쪼그라들었다.

세계 5대 무역항을 뽐내던 부산의 정체성은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연결고리란 점에 있다. 생명선은 일본과의 교역이었다. 1905년부터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던 부관페리는 지금도 운항 중이다.

613년을 자랑하는 왜관의 역사 중에서도 1678년(숙종4년)에 설치된 초량왜관이 부산의 역사를 새로 썼다. 초량왜관이 사실상 오늘의 부산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부산은 국제도시의 DNA를 품고 태어났다. 1884년 지금의 부산역 일대가 바다였던 시절, 왜관에 맞서 청나라 영사관과 청나라 상점거리인 청관이 들어섰다. 오늘의 차이나타운이다. 6·25전쟁 직후 텍사스촌, 1980년대 이후 러시아 상인과 선원이 몰린 초량 외국인상가로 각각 진화했다. 국제시장, 깡통시장, 자갈치시장도 국제도시의 산물이다. 부산사람의 일상엔 국제성이 배어 있다.

최초의 개항장이자 최고의 무역항 부산이 신음하고 있다. 원도심의 쇠퇴도는 95%에 이를 정도로 늙고 병들었다. 2010년 신항 개장으로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활기를 잃었다. 때마침 해양수산부가 주도해온 부산항 북항 통합개발사업에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 한국철도공사, 부산도시공사 등 5개 공공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시행자로 나서기로 했다.

항만과 철도 재배치, 도심 재개발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초거대 부산재생 프로젝트의 가동이다. 미래 100년을 보장하는 신성장 엔진이기도하다. 부산이 네덜란드 로테르담,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마르세유를 뛰어넘는 국제 해양도시의 메카로 거듭날 기회다.

오페라하우스·함상공원·테마전시장 같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뻔한 시설을 짓기보다 부산 특유의 킬러콘텐츠를 고민할 시간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관광객이 몰리듯 10년 뒤 새롭게 깨어난 부산항에 전 세계 관광객이 쇄도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빗대면 가장 부산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세계적인 것이다.
부산답고, 부산스러운 부산의 재생을 기대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에디터 정치 경제 사회 담당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