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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집단인식장치와 코로나19 대응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1 16:46

수정 2020.05.21 16:46

[여의나루] 집단인식장치와 코로나19 대응
인간생활에서 조직은 계속 팽창돼 왔다. 시장경제 체제 한복판에 개인의 자유와 반대되는 계층과 명령체제를 구비한 조직이 확장되는 이유는 유용성이 있어서일 것이다. 조직은 다양한 사회과학에서 다뤄왔는데 경제이론에서 다룬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사실 주류 경제학은 조직을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면 제품이 만들어지는 생산함수로 표현하면서 기업 내부의 메커니즘, 규칙 등은 블랙박스로 처리하거나 가볍게 다뤘다. 시장 개념이 맹위를 떨쳐 조직과 시장을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1980년대부터는 협약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계약론자와 인식론자들은 시장과 조직 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계약론자들은 조직과 시장을 통합하는 개념으로 계약의 실재에 주목했다. 이들에 따르면 인식의 한계로 인해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만을 갖게 되며, 사람 간 정보 차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기회주의적 행동이 나타나는데 이런 요인으로 인해 중장기 계약의 경우 사전에 정해진 계약 내용을 사후 이행하기 어렵고, 따라서 계약주체들은 미리 계약 이행관련 관리구조에 관심을 둔다. 관리구조는 불연속적으로 만들어지는데 한 극단에는 전통적 상업계약이 위치하고 다른 극단엔 계층조직이 위치하며, 중간에는 프랜차이즈나 동맹과 같은 시장과 조직 혼합형 수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직은 중장기 거래 이행을 위한 관리구조를 갖고 있는 계약으로, 시장은 통상적 상업계약으로, 혼합형 수단들은 다양한 유형의 계약들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중장기 계약에서 제한된 합리성과 기회주의적 행동은 유인도식에 의해 방지되고 계약 이행은 담보될 수 있는 바 미래행동이 재설계되도록 하는 각종 수당의 조건적 설정, 정보비대칭성의 역방향에서의 계층 설계 등이 유인도식의 예라는 것이다.

인식론자들은 조직을 계약으로 축소하려는 계약론자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계약 개념에 통합기능을 인정한다 해도 예를 들어 조직으로 상징되는 본인·대리인 관계의 경우 본인은 유인도식에 따라 대리인에게 시장에서 공급되는 최소한의 효용수준을 보장해야 하는데, 이는 시장공급 계약과 대리인·본인 간 계약이라는 계약 간 경쟁시장을 가정한다는 것이다. 계약시장이라는 외생변수를 가정하지 않고는 계약이라는 수단으로 시장과 조직을 내생변수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식론자들에 의하면 조직과 시장을 구별케 하는 것은 기업의 각종 규칙에 담긴 집단적 인식장치다. 이들에 따르면 규칙은 계약의 상태도 아니고 계약론자들이 주장한 제약조건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제약조건으로 인식되는 생산함수는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이 알고 있는 집단지식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기업은 자동차 생산함수를 갖고 있으나, 경영층은 물론 기술자들도 근로자들과 같이 일부분만 안다는 것이며, 이 점이 생산함수가 집단지식이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한편 조직구성원 개인 지식의 합이 생산함수와 같지 않은 점도 증거라는 것이다. 집단지식이 개인지식의 합과 같다면 한 직원의 일탈은 전체 기능의 작동을 중단시키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유동성 공급이나 내수진작 등 정부 대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업 내부의 집단인식이다. 경영층, 근로자, 기술자 등 기업 구성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상황에 대한 정확한 공통인식을 토대로 해결책에 대해서도 집단인식장치를 효과적으로 발휘해 갈 시기다.
시장 대비 집단인식장치의 강점은 위기의 시기나 총체적 혁신시기에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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