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열린 권대희 사건 3차 공판서
피해자와 2살차 그림자의사 '사과' 無
[파이낸셜뉴스] 2016년 신사역 인근 성형외과에서 이뤄진 ‘공장식 수술’로 중태에 빠져 숨진 권대희 사건 의료진 간에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집도를 맡은 원장은 마취과 의사를 신뢰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마취과 의사 측은 마취과 의사의 과실이 전부인 것처럼 몰아가는 게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와 2살차 그림자의사 '사과' 無
사전 고지되지 않았으나 수술을 이어받은 ‘그림자의사’는 법적책임을 인정하긴 커녕 유족에게 사과조차 않고 있다.
■피고인 간 신경전··· 업무상 과실도 떠넘기나
23일 사건관계인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진행된 권대희 사건 3차 공판 전후 피고인들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집도의인 원장 측이 마취과 의사의 과실을 묻는 취지의 사실조회를 재판부 명의로 대한의사협회에 보내기로 한 상황에서 마취과 의사 측이 모두의 과실을 함께 물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사건 초반엔 같은 입장이었던 피고인들이지만 현재 원장은 태신, 마취과 의사는 엘케이비앤파트너스, 신입의사는 유화진법률사무소 등으로 각기 대리인을 나눠 선임한 상태다.
3차 공판 당시 마취과 의사 이모씨 측 변호인은 재판부에 “원장 측에서 (사실조회 질문에) 저희 피고인인 마취과 의사 과실이 전부인 것처럼 마취과 의사 과실만 계속 물어봤다”며 “집도의랑 마취의를 같이 물어봐야하니 사실조회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씨 측 변호인 의견을 받아들여 질문을 합해 함께 사실조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대한의사협회에 보낸 사실조회 답변서 내용을 근거로 재판부는 기소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마취과 의사를 넘어 집도의와 그림자 의사에까지 미칠지 연내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책임 다투는 의사들··· 유족은 '황당'
원장 장씨와 마취과 의사 이씨는 변호인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해 입장을 정리한 상태다. 장씨 측은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지만 법리적으로 업무상 과실치사는 다투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장씨 측 대리인이 지난달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이들은 ‘의료진이 피해자의 출혈량, 활력징후 등에 대한 경과관찰과 지혈 및 수혈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다만 장씨 측은 출혈이 집도의에게 과실이 없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출혈 이후의 관리라고 주장하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장씨 측 변호인은 ‘엄밀히 따지면 환자에게 발생하는 출혈량, 활력징후 등에 대한 경과관찰과 수혈 여부 등에 대한 판단 및 처치는 마취과 의사의 몫’이라며 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마취과 의사 이씨 측에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가 된 ‘공장식 수술’과 관련해서도 ‘현대의 의료는 점차 분업화, 세분화되고 있고 팀의 형태로 의료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각 의료종사자 사이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수술 업무를 나누어 행하는 수술 방법으로 인하여 환자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안 되었다’는 사실에 반박했다.
이번 공판에서 이씨 측이 사실조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건 집도의 장씨가 마취과 의사 측에 업무상 과실과 관련한 책임을 모두 떠넘기고 있다는 불안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이씨는 의료진 중 유일하게 업무상 과실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달리 그림자의사 신모씨 측 대리인은 공판 이후에야 변호인의견서를 냈다. 신씨 측 대리인은 지난달 이뤄진 공판에서 과실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신씨는 21일 재판 뒤에도 사과를 요구하는 권씨 유족을 피해 공판정을 나서는 등 사과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날 신씨는 기자가 “왜 사과하지 않았느냐”, “사과할 계획이 있느냐”,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음에도 일절 답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권씨 수술 당시 신씨는 불과 27세로 권씨와 2살 차이였다. 당초 나이 어린 신씨에 대해선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왔던 유족 측은 지난 공판에서 "사과는 커녕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며 엄중한 처벌을 요청한 바 있다. <본지 5월 21일. ‘권대희 사건 유족 "야만적 수술대에서 아들 죽었다" 절규’ 참조>
■사망 후 4년··· 고통은 오롯이 유족 몫
한편 경희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 권대희씨는 25살이던 지난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졌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권씨는 49일 간 연명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사인은 저산소성 뇌손상이었다. 수술 중 발생한 과다출혈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권씨는 45kg 성인여성 혈액 전체에 해당하는 3500ml의 피를 흘렸으나 이송되기까지 한 차례도 혈액수혈을 받지 못했다. 수술실 CCTV엔 권씨를 수술한 원장이 다른 수술방에서 동시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등 의료진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해당 병원은 권씨가 보고 찾은 것으로 알려진 ‘14년 무사고’ 광고를 사고 이후에도 홈페이지 등에 버젓이 내걸었다 한 차례 처벌을 받았다. 1년 뒤 병원이 이를 재차 내걸어 다시 고발됐으나 담당검사가 이를 기소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본지 2월 8일. ‘[단독] 수술 환자 사망에도 '무사고' 광고 처벌 無... 짙어지는 검찰 '봐주기' 의혹’ 등 다수 보도 참조>
이를 불기소한 담당검사는 형사사건에서도 상해나 사기는 물론 핵심쟁점으로 꼽힌 의료법 위반 혐의도 기소하지 않았다. 이에 1심 공판에선 기소된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무기록지 허위기재 등의 혐의만을 놓고 공방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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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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