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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포스트 코로나, 한국외교의 새로운 길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4 16:55

수정 2020.05.24 16:55

[차관칼럼] 포스트 코로나, 한국외교의 새로운 길
우리 외교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세계 표준이 된 한국형 방역모델이 우리 외교의 신병기로 연일 국제적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점 때문이다. 이는 우리 의료진과 국민의 헌신이 열어준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길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새로운 등정로를 개척하는 등반가의 마음처럼 모든 것이 아직은 생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낯선 길이라고 망설일 이유는 없다.

기회의 창은 늘 열리는 것이 아니다.
이 틈새공간은 금세 사라질 수 있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실기하지 않으려면 신속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는 중견강국으로서 외교적 입지를 다져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힘이 한국의 위상을 높였고,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 이제 전 세계가 우리의 메시지와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쇄도하는 경험 공유와 방역물자 지원 요청이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팬데믹 이후 우리가 맞이할 세상의 모습은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감염병의 유례없는 확산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시작된 세계화의 퇴조를 더욱 앞당겼다.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국가들은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역(逆)세계화'의 흐름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장벽을 쌓고 교류를 제한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으려 한다면 중세가 아니라 석기시대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암울한 각자도생의 시대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 대신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인류가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더 나은 세계화로 향하는 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재(再)세계화'의 길이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참화가 가져온 교훈을 되새기며 국제사회는 브레턴우즈 체제와 유엔을 창설, 규범에 입각한 자유주의 질서를 세웠다. 그동안 우리가 누려온 안정과 번영은 이런 토대 위에 있다. 이처럼 국제위기가 국제협력으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는 적지 않다. 19세기 초 콜레라가 유럽과 신대륙으로 확산하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국제위생회의를 개최했다. 당시에도 주요 의제는 감염병 확산 방지와 안전한 국제무역의 유지였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19세기 중반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 국제자유무역은 황금기를 구가했다.

개방적·협력적 국제질서 속에서 발전해 온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국제연대와 협력에 있다. 모든 국가가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해지지 않는 한 어느 국가도 홀로 안전할 수 없다. 산업과 일상생활의 모든 연결고리가 고도로 세계화된 오늘날, 국제공조 없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중견강국으로서 한국은 다양한 다자외교 무대에서 백신 개발, 취약국 지원, 세계공급망 유지 등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한 국제협력에 기여하고 있다. 나아가 향후 새로운 국제 방역체제와 디지털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신국제교역질서 형성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다시 유발 하라리를 인용한다.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고 있는'상황에서, 우리 외교는 지구 공동체의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가는 역사적 현장의 중심에 서 있다.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했다. 오늘 나의 발자국이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설원 속에서 우리 외교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새겨야 할 마음가짐이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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