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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기본소득 논의에 물꼬, 서둘다 큰코다칠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6 17:22

수정 2020.05.26 17:22

핀란드 실험 실패로 끝나
스위스 투표로 도입 반대
기본소득 논의에 물꼬가 트였다. 코로나 위기 극복용으로 준 긴급재난지원금이 발판이 됐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77.6으로 전월보다 6.8포인트 높아졌다. 넉달 만의 반등이다. 재난지원금이 소비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26일 페이스북에 "K방역에 이어 K경제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며 "K경제의 핵심은 기본소득을 통한 소비역량 강화"라고 말했다.
의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기본소득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사람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우려가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2017년에 로봇세 도입을 제안했다. 일론 머스크(테슬라),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등 다른 IT 혁신가들도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이다. 실리콘밸리 창업자인 마틴 포드는 '로봇의 부상'에서 "기본소득이란 개념은 특히 보수파와 자유주의자들이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비록 실험이지만 기본소득을 실제 해본 나라도 있다. 북유럽 복지국가인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2년간 2000명을 상대로 월 560유로(약 76만원)를 주는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을 주도한 것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연합정부다. 우파는 기본소득제가 잡다한 복지제도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실망적이다. 또 다른 목표인 고용률이 별로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핀란드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실험은 실패했지만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기본소득제를 함부로 시행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매월 월급처럼 받는다. 일회용 재난지원금과는 차원이 다른 복지다. 한국의 경우 한 해 적게는 수십조원, 많게는 수백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기존 복지를 통폐합하고 세출 허리띠를 졸라매도 증세는 불가피하다. 지난 2016년 스위스 유권자들이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에 반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이 저복지·저부담 국가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만약 우리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면 현행 북유럽 복지시스템을 훌쩍 건너뛰는 셈이다. 스웨덴식 고복지·고부담 체제는 잘 굴러간다.
이미 효과가 입증된 모델을 놔두고 효과가 불투명한 신모델(기본소득)로 갈아타는 게 현명한 선택인지는 의문이다. 복지는 주었다 뺏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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