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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불가항력' 인정 여부에 해외진출 中企 구제 달렸다 [법조 인사이트]

박지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31 17:08

수정 2020.05.31 18:56

팬데믹으로 폐업·계약파기 무방비 노출
로펌 문 두드리는 기업들
나라별 규정 다르고 지원도 미흡
中, 조업 멈춰도 급여 줘야하고
베트남은 정리해고 허용하지만
현지 직원 반발 등 걸림돌 많아
전염병도 천재지변처럼 면책될지
전세계적으로 갑론을박 한창
코로나 초기에는 신중한 입장
위기 확산되며'인정'쪽으로 무게
'코로나=불가항력' 인정 여부에 해외진출 中企 구제 달렸다 [법조 인사이트]
#1. 미얀마에 생산기지를 두고 전세계로 수출 중인 국내 한 봉제업체는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주문 물량이 줄어들면서 미얀마 현지 생산 가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현지 노동법에 따라 해고보상금을 지급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 현지 노조의 격렬한 저항으로 구조조정이 원점으로 돌아가 국내 로펌에 문을 두드렸다.

#2. 베트남 현지법인과 계약을 맺고 물품을 납품하는 국내 한 중소업체는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베트남 현지법인의 사정이 좋아지지 않아 물품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계약서 상 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 본사로부터 대금을 대납받을 수 있을지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이 업체는 최근 대금을 받을 방법을 찾기 위해 로펌에서 자문을 받았다.


국내 로펌들이 '코로나 19'여파에 따른 해외 경영애로 관련 법률 자문 특수를 맞았다. 해외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코로나19 돌발 사태로 현지에서 노동 이슈에서부터 조업 중단까지 다양한 법적 문제에 직면했다. 뾰족한 법적 해결 방법이 없는 해외진출 한국기업들을 겨냥해 국내 대형로펌들을 중심으로 웨비나(웹세미나)를 열고 적극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코로나19 피해를 본 기업들이 최종적으로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계약상 면책조항에 포함되는 '불가항력 조항'으로 인정될 지 여부를 두고 법조계에서도 갑론을박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세금 혜택 있어도 폐쇄 지원 없어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지평은 이달 들어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코로나19 리스크 관련 문의가 쇄도하자 관련 웨비나를 열고 현황에 대해 분석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행사에서 지평은 한국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접근성 등을 이유로 비교적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러시아 시장에 대한 코로나19 관련 법률적 대책 점검을 주로 논의했다.

지평 해외팀장 정철 변호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휴업 손실을 보고 노동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때문에 해외업무 경험이 많은 로펌을 찾는 사례가 늘어 법률적 자문에 도움이 되고자 웨비나를 열었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의 최대 고민은 해당 국가의 보상 문제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인 사업장 폐쇄에 나서야 하면서도 정작 해당 정부의 별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현지 노동인력에 대한 급여 역시 조업이 중단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정상 지급해야 한다. 경기 위축에 따른 이익 급감으로 인한 정리해고의 경우 중국, 베트남 등 일부 국가는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현지 노조가 강경하게 대응할 경우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임대료나, 결손금 이월, 사회보장료 그리고 법인세 감면과 같은 세제 혜택에 대해서는 해외 기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코로나19도 천재지변?

법조계는 해외진출한 한국기업들의 근본적 법률지원을 위해 불가항력 조항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코로나19처럼 글로벌 경제를 강타한 전염병 피해도 불가항력 조항이 적용될 수 있느냐가 최대 쟁점이다.

불가항력 조항은 예측 불가능하거나 통제 될 수 없는 외부요인으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거나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 사업 상 차질을 빚었을 때를 대비한 계약서상 면책조항이다.

통상적으로 태풍,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발생한 경우 이에 해당해왔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상황을 불가항력 조항으로 인정할 지 여부를 두고는 전세계적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지난 3월 법무법인 화우도 이와 관련한 문의가 늘자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와 함께 '불가항력 조항의 의의와 실무적 고려 사항'이란 주제의 웨비나를 개최한 바 있다. 국내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불가항력 논의가 주로 민사법 영역에서 이루어져왔고 판례도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계약관계에 관한 규율에서 주로 문제가 됐기 때문에, 노동법 관계에서는 불가항력 논의가 기존에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면서 "노동법 영역에서 불가항력 문제를 민사법 영역과 동일하게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초기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정부는 이를 불가항력 조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이거나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늘고 국가 경제까지 휘청할 조짐을 보이자 이를 불가항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코로나19 초기 고용노동부는 코로나를 천재지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되고 해외 기업과의 거래에서도 불리한 입장이 되면서 부처별 이해관계에 따라 스탠스가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토교통부는 최근 코로나19로 국내외 건설 현장 작업이 중단·연기돼 피해를 보는 건설사들이 늘자 이를 불가항력 조항으로 보고 해외 기업이나 정부에 선행조치를 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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