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트럼프냐 시진핑이냐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3 17:00

수정 2020.06.03 17:00

100년 대계 흔들, 초조한 中
국교정상 40년 미국의 후회
G2 대충돌…韓 중대 갈림길
[최진숙 칼럼] 트럼프냐 시진핑이냐
마오쩌둥 주석이 이끌던 중국의 2인자 저우언라이 총리는 인민복 차림으로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의 베이징 숙소를 찾았다. 1971년 7월 9일 오후였다.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이었다.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키신저는 저서 '중국이야기'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냉소적이었던 마오쩌둥과 달리 저우언라이는 스며드는 사람이었다.
"마오쩌둥은 스스로를 철학자로 생각했고, 저우언라이는 자신의 역할을 협상이라고 봤다. 놀랍도록 겸손했다."

그 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이보다 더 격렬할 수가 없다. 십자포화처럼 쏟아진 극한의 언사는 양국 외교창구에서 나온 것들이다. 중국 관영 싱크탱크는 최근 양회 기간 "최악의 경우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최고지도부에 전달했다. 백악관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중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국교정상화 40년 시간에 후회의 감정이 지극하다. 홍콩 국가보안법과 맞물려 중국에 대한 전 세계 여론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최악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돌아보면 중국의 '죽(竹)의 장막'을 걷어낸 이는 키신저도, 닉슨도 아닌 중국 자신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1960년대 말 거대한 야망이 소련에 간파당하면서 양국 관계가 무력충돌 직전까지 이르자 중국이 새로운 후견인으로 찾은 나라가 미국이었다는 게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고문이자 중국전문가인 마이클 필스버리가 저서 '백년의 마라톤'에서 지적한 바다.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산하 중국전략센터소장 시절 이 책을 펴낸 그는 "마오쩌둥은 악의 없고, 약하며, 원조와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중국을 충실히 연기했다"고 썼다.

'백년의 마라톤'은 중국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 세계 패권을 쥐고 아편전쟁 후 겪은 100년의 굴욕을 씻겠다는 원대한 포부다. 이 내부 은밀한 프로젝트가 인민해방군 간부 류밍푸의 책 '중국의 꿈'에 실려 베이징 서점가에서 유통되기 시작한 게 2010년께다. 그는 대놓고 평화적인 부상을 반박했다. "중국이 충분한 군사력을 쌓아 적들을 격파할 때만 비로소 중국의 부상은 보호받을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공식화한 '중국몽'의 원조다.

"때를 기다리라, 자중하라." 그렇게 외쳤던 전임 덩샤오핑의 가르침을 앞질러 간 것은, 당시 체력으로 마라톤 완주가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마라톤 미션은 20년 더 일찍 끝낼 수 있겠다는 판단도 한 것 같다. 중국 강경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회복 불가능한 미국의 쇠퇴를 확신했다. 그런데 어쩌랴. 경제지표는 반대를 향하고 있었다. 지난해 중국 성장률은 30년 만에 최저였고, 올해 목표치는 발표조차 못했다. 최근 '중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시작됐다'를 펴낸 일본 평론가 미야자키 마사히로는 "중국의 데이터는 거짓의 축적이다. 과거 10년간 성장률은 기껏해야 1%대였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중국의 사나워진 발톱은 흔들리는 100년 대계로 인한 초조함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지금 세계는 트럼프냐, 시진핑이냐 편가르기 세대결을 시작했다. 문제는 우리다.
확고한 원칙부터 세우는 게 우선이다. 핵심은 국익과 보편적 가치여야 할 것이다.
중심을 놓치면 충돌의 쓰나미에 우리가 먼저 당한다는 건 너무나 자명하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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