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단독] 원장도 모르는 의사가 수술실에··· 갈수록 충격 '권대희 사건'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6 14:30

수정 2020.06.06 14:30

고 권대희씨 이송 전 타 병원 의사 방문
"누구냐" 묻자 병원 원장은 "모르는 사람"
유족 "아들 두고 웃어, 피가 거꾸로 솟아"
[파이낸셜뉴스]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ㅈ성형외과에서 공장식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끝내 숨진 고 권대희씨 사건에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권씨가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기 전 이 병원 소속이 아닌 의사가 수술실로 들어와 의료행위에 관여한 것이다.

마취과 의사 이모씨가 부른 지인으로, 다른 의사를 수술실에 들여야 했을 만큼 시급한 상황에서 이송을 지연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이씨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도움을 받기 위해 부른 것이라고 해명한다.

맥박과 혈압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던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이 병원 마취과의사 이씨와 그 지인인 다른 병원 마취과의사, 간호조무사 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지난달 열린 형사공판에서 의료진이 권씨를 앞에 두고 웃었다며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한편 사진 왼편 의자 위에 도착한 혈액이 담긴 아이스박스가 방치된 모습이 보인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맥박과 혈압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던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이 병원 마취과의사 이씨와 그 지인인 다른 병원 마취과의사, 간호조무사 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지난달 열린 형사공판에서 의료진이 권씨를 앞에 두고 웃었다며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한편 사진 왼편 의자 위에 도착한 혈액이 담긴 아이스박스가 방치된 모습이 보인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위급환자 앞에 두고 웃은 '그 사람'

6일 기자가 권씨 유족과 함께 확인한 ㅈ병원 수술실 CCTV 영상을 통해 확인한 결과 권씨가 중앙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기 전 ㅈ성형외과 수술실에 이 병원 소속이 아니었던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밤 11시 권씨와 마취과의사 간호조무사 등이 모여 있던 수술실에 들어온 이 의사는 밤 11시 34분 권씨가 119 구급대에 의해 이송되기까지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CCTV 영상 상에서 이 의사가 ㅈ성형외과 마취과의사보다 현장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 의사는 수술실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권씨 발목에 수액주사를 놓기까지 한다. 사실상 의료행위를 수행한 것이다.

이 의사의 존재는 지난달 21일 있었던 권대희 사건 형사 1심 3차 공판에서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30여 분 간 법정에서 변론한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의료진이 위급한 상황에 있는 우리 대희를 앞에 두고 웃었다”며 분개했는데, CCTV 확인 결과 이때 권씨를 앞에 두고 웃은 의사가 바로 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의사는 ㅈ성형외과 마취과의사인 이모씨가 부른 지인으로, 다른 병원에서 마취과의사로 근무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마취과의사 이씨는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응급상황 발생 시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행위가 요구될 때 (조치가) 신속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인력의 확보를 위해서 제 지인인 동료 마취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씨는 권씨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점을 통보받고 밤 10시 40분께 수술실로 돌아왔음에도 거의 47분여가 흐른 뒤인 11시 27분에야 119에 신고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6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고 권대희씨의 25번째 생일을 가족들이 축하하고 있다. 고 권씨 유족 제공.
2016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고 권대희씨의 25번째 생일을 가족들이 축하하고 있다. 고 권씨 유족 제공.

■누군지도 모르는 의사가 결정했다고?

이씨의 지인이라는 마취과의사는 단순한 조력을 넘어 ㅈ성형외과 환자인 권씨의 이송과 수혈 등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고 이후 권씨 유족이 ㅈ성형외과 원장이자 권씨 수술 집도의인 장모 원장과 나눈 대화 녹취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 원장은 “(퇴근했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병원 마취원장과 다른 마취원장이 같이 있었고 두 분이 같이 왔다”며 '피를 5팩 넣어야 해 ㅈ성형외과가 아닌 다른 병원 이송 후 수혈을 하자는 결정을 누가 했느냐는 질문'에 “상대편 마취원장이 했다”고 답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장 원장은 “그곳(중앙대병원)에 가서 수혈을 하자고 한 그 마취의사가 누구냐”는 유족의 질문에 “그건 나도 모른다”며 “우리 마취과 원장이 아는 사람이고, 판단은 같이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ㅈ성형외과 원장도 누구인지 모르는 외부 마취과의사가 이 병원 위급환자 수혈과 이송에 대한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된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장과 마취과의사가 아닌 외부 병원 마취과의사가 이러한 일을 결정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이에 대해 공장식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해온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법제이사 김선웅 원장에게 묻자 “환자가 집도의를 믿고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건데 마취과의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도대체 누가 책임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버젓이 수술을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이씨가 든 피켓에 '3500cc 출혈에도 수혈 한 번 안 한 의사'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이씨가 든 피켓에 '3500cc 출혈에도 수혈 한 번 안 한 의사'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피는 왔는데 왜 수혈하지 않았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권씨가 수술 중 치사량을 넘는 3500ml의 피를 흘려 과다출혈로 인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숨졌지만, 이 병원에서 한 차례도 혈액을 수혈 받지 못한 것이다.

특히 병원 이송 5분 전 혈액이 도착했지만 권씨에게 이를 수혈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원장 장씨는 유족에게 “피가 두 개 왔을 때, 엠뷸란스가 갈 때 이거 놔주면서 가야되는 것 아니냐 했더니 (지원 온 다른 병원 마취과의사가) 크로스매칭도 안 되어 있고 그냥 간다고 하더라”라고 언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환자와 관련한 주요한 결정을 집도의와 마취과의사가 모두 이 병원 의사가 아닌 다른 병원 마취과의사에게 위임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의사에 대해선 수사과정에서 참고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어떻게 자기 병원에서 문제가 생긴 환자를 누군지도 모르는 의사가 처치하도록 놔두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그 의사(다른 병원 마취과의사)는 대희를 앞에 두고 웃는 모습까지 찍혔는데 멀쩡히 도착한 피는 뒤에 가만히 놔두고 환자를 보며 웃는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더라”고 울분을 토했다.

한편 기소된 ㅈ성형외과 의료진 중 집도의 장 원장과 사전 고지 없이 그로부터 수술을 이어받은 그림자의사 신씨는 권대희 사건 형사 1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장 원장은 마취과의사를 신뢰했고, 신씨는 집도의 등에게 비정상적인 상황을 고지했다는 게 이유로 전해졌다. <본지 4월 11일. ‘[단독] 그날 법정엔 한 명의 기자도 없었지만’ 참조>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상해치사나 사기는 물론, 간호조무사가 35분 동안 의사 없는 수술실에서 지혈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 의료법 위반 혐의조차 적용하지 않아 유족은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며 그 당부를 가리는 재정신청을 서울고등법원에 접수하고, 법원과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상태다.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김성호 기자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하겠습니다.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