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협치의 꽃' 제대로 피우려면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8 18:31

수정 2020.06.08 18:31

文정부 궁극적 성공하려면
인사 독식보다 더 위태로운
법적용 이중잣대 경계해야
[구본영 칼럼] '협치의 꽃' 제대로 피우려면
얼마 전 여야가 모처럼 협치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간 청와대 오찬이 무대였다. 종교가 다른 3인이 관저 뒷산 석조여래좌상을 찾아 함께 합장했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국민통합을 약속하면서 취임했다.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진심으로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감동적 취임 일성이었다. 그러나 곧 국정과제 1호로 적폐청산을 내걸면서 그 여운은 사라졌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전 정권 주요 인사들의 징역형 총계가 150년에 육박하는 기록을 부산물로 남긴 채….

적폐청산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예정된 경로였을진 모르겠다. 당위성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러나 이로 인해 진영 갈등의 골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진보적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조차 올해 초 "(촛불시위 이후 현 정부의) 가장 큰 방향착오가 적폐청산"이라고 되짚었었다. 보복과 갈등의 악순환은 필연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면서 말이다.

사실 협치는 야당보다 문재인정부의 궁극적 성공을 위한 대전제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는 실패를 예약하는 꼴이라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가 맞다면 그렇다. 더욱이 '코로나 쓰나미'가 덮치자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의 성곽을 쌓고 있다. 유달리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다. 가뜩이나 소득주도성장론과 탈원전 등으로 '경제 기저질환'을 키운 현 정부가 국민통합 없이 어찌 이 파고를 넘겠나.

'코로나 계곡'을 건널 대안으로 '한국적 뉴딜'이 거론된다. 그 겉포장 속 알맹이는 재정을 쏟아붓는 일이다. 나랏빚을 눈덩이처럼 불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 만큼 성공을 위해서도, 실족해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서도 야당의 협조는 필수다. 4·15 총선 후 여권이 협치 카드를 꺼내든 건 그래서 시의적절했다. 지난해 과반수 미달 의석으로도 공수처법과 선거제 개편안을 관철한 여당이 177석을 얻었다. 개헌안 외에 뭐든 독자 처리할 수 있게 된 터에 협치를 하겠다니, 반길 일이다.

그러나 진정성이 문제다.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에서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여당을 보라. 관행상 소수야당 몫이었던 법사위원장을 '반납' 받으려는 압박 차원이라고 해도 협치는 빈말이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라. 정의를 독점하면 권력의 정당성도 약화되기 일쑤였다. 현 정부 임기 4년차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말마따나 신적폐가 쌓이고 있는 시점에 불길한 조짐도 보인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유용 의혹에 휩싸인 윤미향 의원을 감싸려고만 하는 여권을 보라. 여동생 전세금으로 사용한 수표라는 '빼박 증거'로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판결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뒤집으려는 기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거치며 현 정권은 상대엔 가혹하나 내 편엔 관대한 인상을 줬었다. 이제 사법행정권에다 입법부까지 장악한 터라 무엇이든 당장엔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진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 중 일부라도 "두고 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면 갈등은 내연하다 언젠가 폭발한다. 특히 인사 독식 그 자체보다 적폐청산 과정의 '내로남불'식 이중잣대가 결정적 협치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봐야 한다.
거여는 협치의 요체가 '공명정대한 법치'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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