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나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고민하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뽑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학자 출신 경영컨설턴트 사피 바칼은 ‘상전이’라는 과학원리를 이용해 혁신 아이디어를 배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룬샷(loonshot)이란 당장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가리킨다. 기존 사업이 잘 되고 있는 기업들은 이런 실험적 아이디어를 묵살하기 마련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대표적이다. 현존 기술로는 독일 잠수함 유보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당시 독일은 미국의 해로를 모두 봉쇄하고 보급 채널을 끊어버리는 작전을 썼다. 미국의 전투기나 항공모함은 유보트를 효과적으로 탐지해낼 재간이 없었다. 사실상 독일과의 기술격차가 있었다고 볼만하다. 미국은 전세를 뒤집기 위해 과학기술개발국(OSRD)을 꾸리고 MIT 출신의 버나바 부시를 사령탑에 앉힌다. 부시가 이끄는 OSRD는 결국 유보트를 탐지할 만한 레이더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탐지거리가 넓은 경량 레이더는 미군 항공모함과 전투기에 탑재됐고, 독일의 유보트는 미군의 레이더 앞에서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놀랄 만한 것은 그 레이더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17년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는데 있다. 해군에 있는 두명의 엔지니어가 이 탐지기술을 우연히 발견했지만 당시엔 묵살되었다.
혁신 기술은 조직이 받아들여야 비로소 현실화된다. 당시 미군은 버나바 부시가 이끄는 과학기술개발국을 못마땅해 했다. 모든 기업의 행태와 비슷하다. 기존에 잘나갔던 조직은 새 아이디어를 만드는 혁신 조직을 천대하고 무시한다. 부시는 이 두 조직 모두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정확히 인식했다. 아무리 좋은 무기도 군이 적극적으로 쓰지 않고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과학기술개발국에서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면서도 항상 군 장성들을 만나며 그들을 존중했다. 새로 개발한 기술을 군이 쓰지 않으면 직접 야전으로 날아가 장성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사피 바칼은 상전이라는 이론을 통해 룬샷을 배양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반쯤 얼어 있는 물을 생각해보자. 이 물은 얼음과 액체 상태가 공존한다. 여기서 임계점을 넘어가면 전부 액체가 되거나, 전부 얼음이 돼 버린다. 혁신이 전이 되는 단계가 오는 것이다. 이렇게 두가지 성질이 공존하는 ‘상분리’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 혁신의 방아쇠를 당기는 원리다.
리더는 기존 조직과 혁신조직(룬샷 배양소)을 함께 경영하면서 이를 조율해야 한다. 기존 조직의 목소리가 강하면 룬샷은 탄생하기 어렵다. 반대로 혁신 조직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리스크는 더 커질 수 있다. 사피 바칼은 성경 속 모세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정원사 역할을 하는 리더가 오히려 조직의 혁신 아이디어를 더 잘 배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 속에는 애플과 노키아, 폴라로이드, 픽사 등 친숙한 기업과 기업인들의 경영 사례가 잘 나타나 있다. 과학 원리를 기업 경영에 접목시켰지만 개념이 쉽고 적용 사례도 현실적이다. 고위 공직자들이나 기업 경영진들이라면 한번쯤 읽기를 권한다. 흐름출판. 468페이지.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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