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전문분야 무료 상담, 공짜가 아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14 18:05

수정 2020.06.14 18:05

[특별기고] 전문분야 무료 상담, 공짜가 아니다
술자리에서 건배를 제의할 때 재미있는 것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는 없는 것이 3가지, 있는 것이 세 가지 있다, ①세상살이에 비밀이 없다. ②삶에 정답이 없다. ③세상에 공짜가 없다. 그리고 있는 것 3가지는..." 이런 식이다.

전문가는 전문 지식을 밑천으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은 상담부터 시작한다. 상담은 사건의 내용을 듣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상담에는 시간이 들어간다. 전문가의 시간이다.

변리사의 예를 들어 보자. 새롭게 개발한 것을 특허권을 받으려고 상담하러 왔다면 기술의 내용을 파악하고, 발명가의 경험에 따라 선행 기술이 뭔지를 듣고, 그것과 비교할 때 특허성이 있는지에 전문가로서 의견을 말해준다. 특허로서 약할 때는 더 개발하도록 요구한다. 이어서 특허신청을 진행할 들어가는 비용, 앞으로 진행 절차를 설명하다 보면 쉽사리 1시간이 지나간다. 소중한 시간을 쏟는다.

건축사 업무를 지켜보았다. 내가 가진 땅을 어떻게 개발할지. 어떤 집을 지어야 할지를 상담한다. 건축사는 그 땅이 도시계획 현황과 법규를 검토하여 적절한 설계안을 잡아 여러 번 상의를 거쳐 방향을 정한다. 여기까지 대가를 받지 않고 진행한다고 한다. 참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도. 그러다가 정작 설계 계약할 때에는 설계 단가에 합의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이는 설계저작권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변리사와 건축사를 예를 들었지만 다른 분야 전문가도 사정은 엇비슷할 것이다.

상담할 때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상담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어떻게 처리할까? 대부분 따로 돈을 받지 않는 것 같다. 분명 시간을 쏟았으니 비용이 들어갔는데, 상담한 것에 돈을 받지 않으면 그 비용은 어디에서 받을까?

자선 사업이 아닌 이상 투입한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문업이 지속할 수 없다. 결국 상담에 투입된 비용은 서비스상품을 통해 회수한다. 즉 변리사는 특허신청 등 사건을 맡으면서, 건축사는 설계용역계약을 맺으면서 비로소 상담비용을 받는 셈이다. 상담 무료라고 써 붙였더라도 공짜는 아니다. 그런데 상담은 내게 받고, 위임계약은 다른 사무소에 가서 한다면 어떻게 될까?

비용은 내가 들였는데, 저쪽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사건을 맡았으니 비용과 수익이 일치하지 않게 된다. 불합리하다. 불합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상담을 무료로 하려면 상담하는 데 성의를 보이기 어렵다. 또 상담할 때 수임사건으로 연결하려고 애쓰게 된다. 제대로 실상을 반영하면 포기하라해야 할 텐데! 실제로 상담은 의뢰인에게 무척 중요한 시간이다. 상담에서 정확하게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걸 바탕으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상담을 무료로 고집하면 질 높은 상담을 받기 어렵다.

발상을 바꾸어서 상담을 유료로 바꾸면 어떨까? 이게 일 처리 원칙에 맞다. 비용이 들어간 만큼 수임료를 받는 것이니 다른 곳으로 비용이 전가되지 않는다. 통념상 상담단계에서 중요성을 못 느낄지 모르지만 사건 초기에 방향이 결정되는 만큼 중요한 단계다. 중요한 단계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방향타를 잡아주면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 수요자에게도 나쁘지 않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면 실제 일 처리는 다른 전문가에게 가서 처리해도 된다. 전문가에게도 제공한 서비스에 대가를 받았으니 꼭 그 사람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상담 비용 때문에 불필요하게 사건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대한변리사회가 상담을 무료로 하지 말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제값을 내고 제대로 된 조언을 받는다면 서로 상생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른 전문영역으로 확산하면 좋겠다. 세상에 공짜 밥은 없다.
제값을 낸 밥은 그만큼 소중하다.

고영회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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